그림 음악 인문학 330

[인터뷰]사진작가 이현권…“교차하는 마음의 흐름을 포착하려 했다.”[사진가 이현권]

“정신과 전공의 시절이던 2007~2009년 동안 1961년 개원한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보건센터)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이 ‘복원(Restoration)’연작이다. 지금은 현대적 건물이지만 당시엔 과거 정신과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았다. 그곳에서 일상은 종종 다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환자들도 병원과 도심 사이 경계의 공간에서 삶의 대부분을 지내셨다. 나와 환자 그리고 공간에 맴도는 여운의 흔적 등이 교차(交叉)하는 마음의 흐름을 포착하고 싶었다.” 한여름 빛살이 초록풀잎에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오후의 명동성당에서 이현권 작가를 만났다. ‘복원’필름 절반정도가 손실되는 아픔을 겪었고 10여년이 흐른 뒤 아주 우연히 사진과 필름들을..

[INSIGHT FINE ART]사진작가 이현권‥고통과 희망 경계의 자국[사진가 이현권,이현권 작가]

“시대가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흘러가면서 반드시 칼로 새긴 듯한 흔적을 남기고 어떤 시대는 뜬구름이 흘러가듯 평범하고 담담하게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것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약간의 맛만 남길 뿐이다.1)” 강물에 닿을 듯 낮게 무리지어 맴도는 하루살이들이 오므려지다 펴지는 풍선처럼 허공을 자유롭게 유동했다. 햇빛사이 슬로 모션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명랑하게 튕겨 오르는, 번짐의 공간이 짓궂게 퍼져갔다. 미숙했던 ‘나’의 분신이 물 위에 어른거릴 때 암울했던 불안이 버림받은 채 당당히 흘러가는 물살위로 스러져갔다. 에릭 사티 ‘짐노페디(Gymnopedie No.1)’ 피아노 선율이 풋-의식으로 배회하는 가냘픈 영혼의 축축한 ..

서양화가 류영신‥적막과 낯섦에 열리는 감각의 회생[류영신 작가]

“나타난 것을, 잘 자리 잡은 것을, 동굴에서 움직이는 자라고 이름 하는 것을, 크나큰 자리를, 이곳에 온전히 바쳐진 이것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눈을 깜박이는 것을, 있음과 없음을, 바랄 것을, 가장 뛰어난 것을, 생겨난 것들의 이해력을 넘어선 것을, 너희는 바로 이것을 알아라.” 화면은 이해와 포용의 유연한 곡선이 어우러지는 형상으로 부각된다. 장구한 세월의 인고가 켜켜이 쌓여 마침내 햇살에 드러나는 황금장식을 두른 듯 한 몸체, 까마득하여 깊숙하며 잠잠한 듯 움직거리는 저 동양적 현(玄)의 검은 빛깔, 광활한 운율의 추상서정으로 수놓은 물결과 하나 된 낙조(落照)…. 한지(韓紙)의 찢긴, 갈라지며 완전히 끊어졌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여명의 빛살에 여리게 드러나는 순환의 고리를 발견한다. 폭풍이 휩..

[ARTIST JUNG IN WAN]서양화가 정인완‥일탈의 욕망 자연회귀의 기호학[정인완 미술가,정인완 작가]

“코드는 현존하는 실체들을 부재하는 실체들에 결합시키는 의미화의 체계이다. 의미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저 규칙들을 토대로, 수신자의 지각(知覺)상에서 물질적으로 현존하는 무엇인가가 다른 무엇을 대신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신자의 지각행위와 해석적 행동이 의미화 관계의 필수적 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1)” 포플러나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강둑. 잔바람이 불고 펄럭이는 넓적한 잎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 듯, 날렵한 송사리 떼들이 어우러져 투명한 시간의 풍경을 드러냈다. 묵언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강물에 종이배 하나 떠가는가.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HAUSER)연주 ‘River Flows in You’ 선율이 강렬하고도 장엄한 빛의 줄기를 삼림의 대지로 인도한다. 전령(傳令)인가. 앵무새 ..

서양화가 한영준…점·선·면 입체감 회화와 조각의 융합[한영준 작가,HAN YOUNG JOON]

“어린아이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평가하는 인지능력이 저하된 노인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살아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가장 정교하다는 로봇도 사진도 인형도 최고의 기술로 제작된 영상도 실제 동물만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1)” 가족의 일원으로서 반려동물인 고양이, 개, 토끼 등이 등장하는 화면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컬러의 색채로 우러난다. 강아지가 먼 길을 가고 난 후 슬픔에 잠긴 지인을 위로하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컬러풀하게 산뜻한 기분의 느낌을 담았다. 그런가하면 다른 색감이 층층 배어나오게 오랜 공력(功力)을 들여 완성한 ‘뒤러의 토끼’작품도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는 독일 뉘른베르크출신의 르네상스 대표화가로 한영준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후지츠카와 난학(藤塚と蘭學)]추사 김정희와 후지츠카 치카시, 민족과 시대를 초월한 숭고한 만남[Chusa(Wandang) Kim Jeong-hui,秋史(阮堂) 金正喜,Hujitsuka Chikashi,藤塚鄰]

“청·조선의 거대한 문화 교류를 일본의 학자가 천명(闡明)해 낸 것은 하늘의 오묘한 조화입니다.1)” 후지츠카 치카시(Hujitsuka Chikashi,藤塚鄰,1879~1948,이하 후지즈카)는 동경제대 중국철학과를 졸업했고 중국청조학계와 추사 김정희(Kim Jeong-hui,秋史 金正喜,1786~1856)의 학연을 추적하여 1936년 ‘조선에서 청 문화의 이입과 김완당’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조고증학·경서(經書)문헌연구에 일생 전념한 인물이다. 후지츠카 아키나오(Hujitsuka Akinao,藤塚明直,1912~2006)는 부친이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할 때 한국에 와 5년간 머물렀고 도쿄대학 중국철학과 졸업했다. 1942년 ‘황청경해(皇淸經解)의 편찬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

서경자 작가‥마음의 결 따라 터치 자유분방한 감정의 궤적

서양화가 서경자 ‘명상’연작…풍부함·희망 충만한 평화로움 아주 오래 달인 마음의 결이 이럴까. 침묵이 이렇게 아름답다. 고요한 잔물결 위. 야윈 가지에 이른 봄 초록의 조그마한 흔적, 애증의 파고가 일렁일 때마다 여미고 또 여며 속으로 녹여 내린 작거나 혹여 커다란 파문이 원(圓)으로 일다 이내 잡힐 듯 사라졌다. 나무, 물, 하늘, 별…. 생멸(生滅)을 거듭하는 자연은 인식할 수 없었던 것들을 드러내 놀라운 생명력을 실감하게 한다.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잔잔히 흔들거리는 화면은 우리들의 적절하고도 친밀한 질문에 부드러운 햇살 아래 하얗게 튕겨 빛나는 화이트 사파이어처럼 깨끗하면서도 풍요로운 선율들로 흐른다. 고요의 바다, 생(生)의 항해를 떠올리는 그녀의 매우 능숙한 문체는 우리의 정신적 체험을 때로는..

미술비평가 이일-확장과 환원의 역학[Lee Yil,李逸,스페이스21,SPACE21]

“일찌기 발작크는 ‘生은 곧 형태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生은 결코 觀念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克服하고 창조하는 生이다. 그리하여 生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 예술도 또한 그것이 자체 내에 生命을 잉태 한 것이라면 觀念의 테두리를 뛰어 넘는다. 그것은 觀念을 극복하며 脫·観念의 세계, 즉 구체적이요 직접적인 知覺對象으로서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 世界는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항상 열려져 있고 또 새롭게 발견되는 世界이어야 하는 것이다.1)” 미술비평가 이일(Lee Yil,李逸,1932~1997)은 1960~90년대까지 한국미술계에 미술비평(미술평론)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고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성에 초석을 다진 선구자적 미술가이다. 이번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전(..

한국화가 김현경‥적묵(積墨)의 빛살 생명성의 소통

“도는 텅 비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그윽하도다! 만물의 으뜸 같도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얽힘을 푸는도다. 그 빛이 튀쳐남이 없게 하고 그 티끌을 고르게 하네. 맑고 또 맑아라!1)” 댓잎에 스미는 먼 길을 온 빛살의 여정만큼 먼먼 그 곳엔 생명의 발아(發芽) 그 처음이 있을까. 얼마나 오래토록 시간의 거울을 닦으면 까칠한 듯 보드라운 잎 새 위 티끌하나 없는 맑디맑은 이슬방울을 받아낼 수 있나. 푸른 밤바다 일렁이는 물살 같은 대숲으로 만개한 꽃잎들이 몸을 던진다. 숲은 슬픔과 관용이 뒤섞인 황홀한 향기를 진동하며 노래 부른다. ‘살풀이 춤’ 허공 가르는 흰 수건처럼 죽엽(竹葉) 감싼 하얀 꽃잎들이 유성(流星)의 밤하늘을 날아오르는데…. 경기도 양주시 소재, ‘안상철미..

[INSIGHT FINE ART]서양화가 박선랑, 사랑이 싹트기를 슬프지 않기를

사랑이 싹트기를 슬프지 않기를 “말해보렴, 아가트, 가끔씩 네 마음이 컴컴한 대양 같은 추잡한 도시로부터 멀리, 푸르고 맑고 깊은 처녀성 같고, 광채가 찬란한 다른 대양으로 날아가버리니? 네 마음이 가끔씩 날아가버리니, 아가트? 1)” 강가 물안개. 아른거리는 잔영(殘影)으로 부드럽게 아침햇살 스며든다. 그리움은 벌써 가 닿아 말을 건네는데. 치마를 입은 여인. 한 손은 주머니, 한 손만 내놓고 있는 무언(無言)의 미묘한 여운사이로 팔랑거리는 나비 떼…. ◇우연의 끌림 꽃처럼 피어나길 그동안 동판화로 호평 받아 온 박선랑 작가는 최근 드라이포인트(dry point)판화기법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화면은 은일한 교감메시지로 승화시키는 어떤 헤아릴 수 없는 연속의 끌림으로 읽혀진다. 간결하고도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