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서경자‥마음의 길 영혼의 안식[서경자 작가,Suh Kyoung Ja]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4. 9. 19:23

Meditation(명상), 162.2×112.1㎝, Acrylic On Canvas, 2024.

 

사막은 무색. 아무런 색깔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몇 가지 색깔. 사막은 무취. 그냥 모래 마르는 냄새 풀잎 마르는 냄새. 사막은 무한. 하늘이 그렇고 모래밭이 그렇고. 사막은 투명. 하늘이 또한 그렇고 사람 마음이 다시 그렇다. 사막의 향기를 드립니다.1)

 

금빛노을이 모래 속을 파고들었다. 사막은 온통 번트엄버(Burnt Umber)컬러로 젖어들고 한낮의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은 밤새 평지를 이루다 때론 모래 산을 만들며 낯선 풍경 속으로 이방인을 초대했다.

 

진솔하게 자신의 흔적을 모래밭에 새긴 바람의 자국위로 새벽의 축축한 기운이 번진다. 숨죽이듯 스러져 있는 떨기나무 그루터기에 대롱대롱 달린 작디작은 영롱한 물방울이 아침의 위대함에 반짝였다. 떠오르는 여명(黎明)은 점점 모래색깔을 바꾸고 낙타의 등처럼 휘어진 능선너머에서 아련한 선율이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의 뿔피리 소리 위로 겹쳐지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가 얼마나 싱싱한가! 현과 금관에 발터의 입김이 스며들면 악단은 단연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넘치면서 눈부신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올라간다.2)

 

Meditation, 90.9×60.6㎝, 2023.

 

모래의 유기적 선(Organic Line)들이 이뤄내는 고운 결들은 수시로 미묘한 문양을 그려내며 존재를 증명해 냈다. 그 확신에 찬, 거센 회오리로 언덕을 만드는 바람과 모래의 힘은 인류사에 또 얼마나 위대한 영감을 선사했던가.

 

바람이 멎자 일제히 자신의 무늬를 드러내는 모래밭을 보다가 불현 듯 끝없이 언덕으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만했던 한 사내와 부조리(不條理)가 떠올랐다. “개인적인 운명은 있어도 인간을 능가하는 운명이란 없다. 혹 있다면 오직 그가 숙명적이기에 경멸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단 한 가지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에 관한 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3)

 

Meditation(명상), 116.8×80.3㎝(each) Acrylic On Canvas, 2024.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저 황량하고도 적막(寂寞)한 절대고독의 모래밭에서 다시 바람의 소리가 감지된다. 갈증으로 메말라가는 입술, 서서히 풀려가는 동공 속으로 이글거리며 열기를 뿜어내는 모래 산을 기어오르는 전갈이 들어왔다. 그때 누군가 죽을힘을 다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오 선인장 꽃, 오아시스!

 

Meditation, 90.9×60.6㎝, 2024.

 

“참선을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는 산을 산으로 보며 물을 물로 본다. 그가 내면의 눈으로 어느 정도 진리를 보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산을 산으로 보지 않고 물을 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면, 그는 다시금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게 된다.4)

 

[참고문헌]

1)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 나태주 시집, 열림원.

2)이 한 장의 명반, 말러(Gustav Mahler) ‘교향곡 1D장조 거인(Titan)’, 안동림 지음, 현암사.

3)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김화영 옮김, 민음사.

4)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뤼디거 자프란스키(Rüdiger Safranski)지음, 박민수 옮김, 북캠퍼스.

 

[글=권동철, 4월8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