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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IN]화가 윤종득‥선의 준법 산의 축약[백악미술관,윤종득 작가,윤종득 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5. 18. 21:05

작품 앞에서 산하 윤종득. 신몽유도원도(新夢遊桃源圖), 가로8m60㎝, 세로155㎝ 황토에 먹, 2024. 사진=권동철.

 

 

작품 앞에서면 산길에 첫 발을 들여놓은 느낌이다. 장엄한 바위와 능선의 기운생동(氣韻生動)에 압도당하고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어떤 희열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윤종득 화백이 수십 여 년 동안 축적한 기운을 온전히 쏟아 부은, 혼신의 필법으로 그려낸 역작 ‘신몽유도원도(新夢遊桃源圖)’가 태고의 골격 그대로 초연히 서 있다. 가로 8m60㎝, 세로 122㎝ 초대작이다.

 

 

신몽유도원도-맨왼쪽 디테일(detail), 사진=권동철.

 

 

화면은 모든 잎들이 낙하한 목체(木體)만이 앙상하게 드러난 겨울 산처럼 그러나 들여다보면 복잡다단한 고리의 결합과 확장으로 탄탄한 축약의 아우라를 품고 있다. 인간군상, 갑골상형 같은 전서(篆書)의 문자, 자연의 형상 등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생(生)의 속뜻을 일깨운다.

 

그곳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대련(對聯)으로 널리 알려진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를 윤종득 작가의 독자적 조형언어 ‘산하준법도(山下皴法圖)’로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신몽유도원도-중앙부분 디테일(detail), 사진=권동철.

 

 

윤종득 ‘신몽유도원도’는 돌을 칼로 각(刻)할 때 돌이 깨지면서 의도에 따라 혹은 의도치 않게 생기는 파열을 돌 대신 종이에, 칼 대신 붓으로 구현했다. 전체를 가장 단순화시킨 바탕에는 전각(篆刻)의 선(線)이 깔려 있다.

 

쇠같이 날카롭고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탄력 이른바 붓 속에 칼이 감추어진 형국이다. 바로 전각의 선과 회화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오직 선의 형태에 의해 결정되는 에너지 가득한 산하준법이다. 선 변화가 만든 무수히 많은 공간들엔 도침(擣砧)한 장지와 황토를 구운 가루, 먹과 경명주사 등의 재료가 운용되고 작가는 직접 짠 나무를 쓴다.

 

 

신몽유도원도-오른쪽 디테일(detail), 사진=권동철.

 

 

한편 이번 ‘산하준법도’개인전은 5월16일 오픈, 22일까지 서울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 1~3층 전관에서 총64점을 선보이며 성황리 전시 중이다. 한국현대미술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전시로 기록될 만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윤종득 작가는 “순수성을 찾으려는 나의 구도(求道)가 관람자와 교감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말했다. 시·서·화를 즐겼던 자유분방한 안평대군 미의식이 윤종득 작가의 이상향 ‘신몽유도원도’에서도 배어나온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신성이 응축된 사의(思意)의 작품세계임을 뒷받침했다.

 

 

신몽유도원도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글=권동철, 5월18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