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재의 ‘연관’에 대한 물음은, 현존재의 발현 또는 발생을 묻는 존재론적 문제이다. 그리고 이 ‘발생의 구조’와 그 실존적, 시간적 가능조건을 밝히는 일은 ‘역사성의 존재론적 이해(ein ontologischen Verständnis der Geschichtlichkeit)’를 획득하는 일이기도 하다.1)”
종일 비가 내리다 그친 새벽녘. 커튼을 젖히고 다시 잠을 청하려던 그때 유리창 너머에 비친 훤칠하게 생긴 보름달이 성큼성큼 한 걸음에 가슴팍으로 다가오는, 신성(神聖)…. 교교함과 그 역동의 기운 앞, 짤막한 탄성의 찰나. 남색(藍色)하늘에 무심히 두둥실 흘러가는 오 순백의 달항아리!
◇고격의 시공간 생명의 영원성
화면은 신사임당 초충도(草蟲圖)에서 차용한 나비가 마치 오늘날에도 날갯짓하는 듯 우아미의 스토리텔링을 연상케 한다.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나비이미지 그리고 자개와 크리스털의 발색이 앙상블을 이루는 컨템퍼러리 미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메신저로 생명의 영원성을 일깨워주려는 듯 고품격의 시공간을 날아다니며 기운생동을 불어 넣는다.
천년세월이 흘러도 패각(貝殼)의 자개는 자연그대로 살아 숨 쉰다. 어머니의 애장품이던 장롱의 매혹적인 자개 빛에 영감을 얻은 정현숙 작가가 오브제로 이를 운용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자개조각 하나하나를 붙여가며 완성하기까지 고된 신체성의 노동이 요구된다.
근작엔 달항아리의 배경을 컬러풀하게 변주하여 단순하지 않은 형태로 보이는 변화로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 크리스털의 투명성은 순수의 깨끗함을 더해주어 신선한 느낌의 독창성을 선사하고 있다. “칠과 나전이 이루는 색채와 조화는 약동과 묘사(描寫)의 박진(迫眞)을 곁들여 황홀한 꿈을 빚는다. 나전칠기의 꿈은 그대로 우리조상들이 젖어 온 생활의 꿈이기도 하다.2)”
◇본래적 기질 자연과의 합일
호젓하고도 어딘지 고즈넉한 분위기의 백자 달항아리엔 한민족유전자에 내재된 꾸밈없는 너그러움의 본래적 기질이 스미어 있다. 또 나비가 팔랑거리는 조선시대문인화의 한국적서정미가 스민 전통형식을 작가는 현대적인 물성과 기법으로 융화해 냈다. ‘역사에 빛을 더하다.’라는 정현숙 작품세계의 지향처럼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미학이 매혹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색채적으로 조선은 다른 모든 나라에 비해 매우 단색적이다. 이것이 적조미(寂照美)의 일면으로 나온다. 적조미는 사상적으로 탐구해 얻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요 생활적으로 육체와 혈맥을 통해 얻는 커다란 성격의 하나다.3)”
[참고문헌]
1)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2)나전공예, 권상오 지음, 대원사.
3)고유섭 평전, 이원규 지음, 한길사.
[글=권동철, 6월8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