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332

서양화가 서경자‥마음의 길 영혼의 안식[서경자 작가,Suh Kyoung Ja]

사막은 무색. 아무런 색깔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몇 가지 색깔. 사막은 무취. 그냥 모래 마르는 냄새 풀잎 마르는 냄새. 사막은 무한. 하늘이 그렇고 모래밭이 그렇고. 사막은 투명. 하늘이 또한 그렇고 사람 마음이 다시 그렇다. 사막의 향기를 드립니다.1)” 금빛노을이 모래 속을 파고들었다. 사막은 온통 번트엄버(Burnt Umber)컬러로 젖어들고 한낮의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은 밤새 평지를 이루다 때론 모래 산을 만들며 낯선 풍경 속으로 이방인을 초대했다. 진솔하게 자신의 흔적을 모래밭에 새긴 바람의 자국위로 새벽의 축축한 기운이 번진다. 숨죽이듯 스러져 있는 떨기나무 그루터기에 대롱대롱 달린 작디작은 영롱한 물방울이 아침의 위대함에 반짝였다. 떠오르는 여명(黎明)은..

[전시장 IN]서양화가 이태현‥역동의 우주 대자연의 진리[Lee Tae Hyun,통인화랑,이태현 미술가,이태현 화백,이태현 작가,화가 이태현]

“만 번을 울린 북도 그 빈속은 상하지 않고, 만 번을 구른 수레도 그 중앙 빈 곳은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虛)를 진(眞)이라고 한다. 萬鳴之鼓其中空不傷, 萬轉之輪其中空亦不傷, 故其虛爲眞矣.1)” 동양사상의 인간과 자연관이 융화된 미학적 토대를 55년여 천착해 오고 있는 이태현(李泰鉉,Lee Tae Hyun,1940~) ‘生滅點華(생멸점화)’전시회가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통인화랑 3층 전시장엔 불교 화엄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우주융합현상의 ‘Space’연작을, 5층은 역학(易學)의 원리를 근간으로 괘(卦)의 기호학을 추상화로 풀어낸 작품들을 보여준다. “상상력과 구성력의 풍부함에서 오는 모나지 않은 멋, 끝이 날카롭거나 차갑지 않고 순박한 데서 느끼는 구수한 큰 맛, 단순한 색채에서 오는 적..

[전시장 IN]단색화가 신기옥‥통찰의 힘 필연의 귀환[갤러리 비선재]

“태양의 불이 흩어져버리는 한, 그것은 우리의 생명의 불에 작용하지 못한다. 그 응집은 우선 처음에 자신의 물질화를 낳고, 다음에 순수한 실체에 그 역동적 가치를 준다. 근원적 정령들은 원소에 의해서 ‘끌어당겨지는’ 것이다. 더욱 조그만 은유를 쓴다면, 그러한 ‘인력(attraction)’이 ‘우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이와 같은 화학(化學)이 있은 후에 심리학에 도달하는 것이다.1)” 물안개 걷히자 어느새 풀잎들이 아우성치듯 연록 숲으로 물들여 놓았다. 길이 열리자 애잔히 머뭇하던 봄볕이 물의 품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물과 빛이 섞이는 공간엔 거품이 부풀다 이내 사라졌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2번(Op.102.Andante)이 무심한 시간을 품은 채 강바람 ..

단색화가 신기옥‥진리의 기품 곧은 이치의 인간학

“필연의 법칙은 과거가 그것을 단순히 다른 형태로 반복하는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뒤따르기를 바라고, 모든 것이 언제나 흘러가기를 바란다. 순수 지각으로부터 기억으로 이행하면서 우리는 정신을 향해 결정적으로 물질을 떠났다.1)” 봄비가 유장한 멜로디처럼 대지에 스며든다. 강가저편 도화(桃花)에 매달린 물방울이 춘파(春播)가 대지를 막 뚫고 나오는 찰나에 떨어진다. 어느 골짝 습윤한 기운이 맴도는 억겁풍상 고비(古碑)엔 서릿발 같은 문기(文氣)의 정신이 세월의 허무한 자국을 껴안은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숲은 돌아가는 길에 자리해 빽빽하고, 물은 뭇 산을 뚫고 멀리 흐르네. 꽃이 핀 나무들엔 향기로운 바람 그득하고, 달빛 받은 긴 내는 명주처럼 고은 색으로 환하네. 林當歸路密 水貫衆山遙. 開花萬..

조각가 박석원‥자연과 인공 동·서양 융합의 현상학

“만물들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1)” 한국현대기하추상조각 선구자 박석원(1942~)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4.19혁명을 거쳐 온 세대다.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69), 한국현대조각회창립멤버(69)로서 70년대 한국미술전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인위와 자연성의 조화로운 융합사유의 행보를 보인다. 조각과 한지평면작품 전시공간은 정결한 느낌의 아우라를 자아낸다. 박석원 예술의 주요매체인 돌, 나무, 한지, 흙, 철 등 유·무기체를 아우르는 매우 본질적이며 유동적 재료들의 관계성을 통해 생명세계의 충일과 확장을 보여준다. 작품들엔 사물의 최소공간에 오브제를 현시(顯示)함으로써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키는, 그럼으로써 ..

서양화가 이태현‥생성과 소멸 불멸의 기하학[李泰鉉,Lee Tae Hyun,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이태현 미술가]

“모든 종소리 잠들었다가 어느 날 꽃으로 피어서……1)” 영원을 품은 하루가 환희처럼 동트고 있네. 부드러운 첼로선율 같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만곡(彎曲)의 물살이 여명을 껴안는 시각. 마침내 물과 불이 하나 되는 매혹의 공간감, 충만한 겹꽃으로 피어나는 저 부용이 장엄한 화엄(華嚴)을 맹렬히 감싼다. 아 바람 속으로 들어가 바람이 되고 스스로 꽃이 되는 운율이 역동의 기운으로 번진다. 빼곡했던 은하가 자리를 비워준 새벽녘하늘. 저 허(虛)의 공간으로 새 한 마리 높이 날아가누나!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 와서, 그것으로 돌아갈지니,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2)” ◇가없는 빛살과 어둠의 행익 작업은 바탕을 단일하게 만들고 테이프로 완만한 선을 만드는 방법론을 구사한다. 한옥지붕의 ..

[인터뷰]서양화가 이태현‥“나는 다시 태어나도 정신계의 미학에 천착할 것”[李泰鉉,Lee Tae Hyun,이태현 화백,이태현 작가]

“1970년대 중반 동대문상고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학교미술실에서 실험 작품을 하다가 탄생된 것이 현수곡선 작업이다. 처음엔 주역의 괘(卦)를 통해 무량무변(無量無邊)을 함축한 삼라만상을 표출하다가 중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우주현상을 해내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탄생됐다. 그러다보니 색채가 흑백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흑색작품이 많이 나왔다. 일부 흰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변모되는 것을 시도했었지만 역시 흑색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새해연초 경기광주 이태현 작가 작업실을 찾았다. “지금 돌아보면 일생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40대 좋은 나이에 연구한 결실이라 여긴다.”라고 덧붙였다. 이태현(李泰鉉,1940~)미술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했으며 청주 서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

서양화가 제이영…찰나의 획(劃) 간결하고도 거대한 신화 [J Young]

“우리가 말하는 직관은 무엇보다도 내적 지속과 관련된 것이다.…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직관이 의미하는 바는 의식, 그것도 직접적인 의식이다. 그것은 보여지는 대상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투시다. 그것은 접촉이자 일치인 인식인 것이다.1)” 화면은 평면에 한순간의 힘으로 찌그러져 구겨진 흔적과 그 그림자를 남기는 외현의 사실감으로 드러난다. 기억의 집적이 열어놓은 광대무변(廣大無邊) 공간으로 아직 덜 아문 상처를 위무하는 선율이 어디선가 꿈길처럼 들려왔다. 반복되는 물성의 겹으로 축적된 색칠 위 단상(斷想)의 빠른 필치가 남긴 한순간의 흔적에 일상이 기록되는 새벽녘. 마음의 몰입이 베푸는 안온한 기(氣)의 생동 그 붓 자국에 흠뻑 적셔져 마침내 소멸되는 망상(妄想)의 조각들이 허공을 향해 살풀이춤을 뿌리누나...

조각가 박석원‥분할과 확산 저 시공간의 몸짓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1)” 박석원 평면작업은 어떤 한지특성의 물질감을 분할하여 변주한다. 수평수직의 접합을 통해 확산을 구현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겹쳐진 화면 중간 자유롭게 분할된 형질들의 관계성을 다룬다. 흰색과 검은색이라는 강하고 밀도 있는 무게감의 양면성에 작위(作爲)를 개입함으로써 입체적 효과의 극대화와 깊이를 구사해내기도 한다. “조각을 하다 보니 몸에 배어있는 덩어리에 대한 감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화백의 말처럼 한지라는 재..

화가 윤종득‥전각예술 인식확장과 새로운 지평[갤러리 일백헌,윤종득 작가,윤종득 화백]

아침 겨울햇살이 한옥 창(窓)으로 스며들었다. 깨끗하고 따스한 온기가 전시장 가득 피어나 번지고 골짜기서 마주친 촌로(村老)의 깊은 주름처럼 화면은 상처를 도려낸 자리에 새 살이 돋은 생명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간 회귀의 자국에 세속의 여운이 굴곡진 선(線)으로 길을 잇는다. 한 줄기 바람이 메아리처럼 지나고 목마른 짐승들이 얼음장 같은 낙수(落水)에 갈증을 달래는 저녁. 산 혈맥(穴脈)이 신음을 토한다. 저 피안(彼岸)의 꽃봉오리가 천상에서 쏟아지고 만상(萬象)의 번뇌(煩惱)가 손살 같이 날아가는 텃새 깃털에 실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녕 일장춘몽인가. 보채는 아이에게 등짝을 내준 할아비의 자애(慈愛)처럼 설악공룡은 기꺼이 제 체온을 나누어 혹한에 우짖는 바람을 잠재운다. 산다는 것도 꿈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