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하의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이고 특성이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구나. 그렇구나,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이야기와도 같은 것이구나.1)”
오유화 작가 ‘사계절 장생도’는 100호 캔버스 32개를 이어 붙이는 3200호 크기의 ‘초대작(超 大作)’프로젝트다. 일생의 예술혼을 쏟아 부을 6년여 작업소요기간 중, 2023~2024년에 걸쳐 800호 ‘봄’을 최근 마무리했다.
지난 12월11~24일까지 서울 인사동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2024 MIAF(목우아트페어)’에 출품한 ‘봄’은 미술애호가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관객몰이를 했다.
“억겁시간 풍상을 이겨내고 제 모습을 간직하는 바위, 청청한 물줄기를 그리며 마음 닦는 정진의 시간과 함께했다. 그래서 그림의 노동과 수행성이 다른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며 2년에 걸쳐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쉬운 작업은 없지만 결실은 늘 기쁨이다.2)”
◇화면분할과 봄날의 기운생동
오유화 화백은 우리선조들이 불로장생 염원을 기원했던 장생도(長生圖)를 독자적 필체로 풀어가고 있다. 전체구성은 해, 달, 구름, 물, 산, 바위, 소나무, 대나무, 학, 사슴, 거북, 불로초 등을 발돋움하는 봄의 기운생동(氣韻生動)에 초점을 맞췄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적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간의 풍경흐름을 활력의 붓 터치로 묘사했다.
배산임수 남향을 배경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맑은 두 계곡물줄기는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순연한 선(線)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호수 혹은 강둑 양지바른 곳 마음의 고향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것만 같다. 소나무 군락이 푸름으로 발돋움하고 암수 무리지은 사슴과 고고한 학(鶴)들이 한가로이 봄볕을 즐기는 서정의 풍경은 점, 선, 면의 조화로운 운용을 통한 안정된 완급조율의 원숙함을 드러낸다.
산마루에 쏟아지듯 햇살이 튕겨 오르는 정경은 한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서너 번 기침을 하고 햇빛 속으로 찰랑찰랑 흘러가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덤벙대지 말고 조용히, 시를 생각하며, 시를 기다려야겠다.3)”
한편 대형화폭을 화면분할로 구성하여 ‘봄 화의(畫意)’를 훨씬 풍성하게 드러낸다. 왼쪽에 해와 달을 띄워놓음으로써 음양오행의 동양정신을 내비친다. 관념적 사유의 무한지평을 열어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의 깊은 순환을 암시한다. 이와 함께 오른쪽 구상적 봄 전경의 스토리텔링과 자연스럽게 잇는 융합을 보여주는데 마치 파노라마처럼 ‘봄’세계에 동화(同和)되는 감흥을 자극한다. 화면하단 흙과 돌을 다져만든 순박한 물둑과 맑은 수면의 유연한 속도감의 처리는 마침내 하나로 모아지는 화합과 조화를 상징적으로 전한다.
◇희망의 스토리텔링 생명성의 미
오유화 작가 ‘봄’작품엔 우리 산하(山河)의 자연미에 대한 요소가 스며들어 풍성하고 가슴 벅찬 희망스토리텔링이 스며있다. 화면이 속도의 문명에 지친 자아를 깨끗한 공기로 환기시키듯, 정지된 것이 아니라 숨 쉬고 있는 경치라는 점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운율이 발현하는 뜨거운 생명성의 미학과 연동된다.
풍경을 순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빛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정경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나무, 새, 산짐승, 햇빛 머금은 물결의 흐름 등이 바람의 리듬성과 절묘하게 호흡하여 고요하면도 활력의 봄날풍경을 보여주는 의미망으로 펼치고 있다.
그리하여 기교의 멋스러움을 자제하고 생명성의 이야기를 자상하게 풀어 판타스틱 한 어느 봄날 아름다운 한반도산천의 토착성(土着性)에 대한 애정을 상기시킨다.
◇장생도-한국현대미술로 계승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체계에 대한 탐구를 제작 내내 견지해 왔다.4)”는 오유화 화백 말처럼 새롭게 해석한 ‘장생도-봄’은 일생 화업의 역량이 녹아든 사의(寫意)의 미학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지극히 소박한 진리를 품은 가장 한국적 봄의 무릉도원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표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장생도는 가장 자연친화적 유산의 그림이라 여긴다. 나의 표현법이 현대성을 지향하지만 전통소재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봄’ 800호를 에스키스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망이 솟아나는 것을 체험했다. ‘역사에 남을 기록성의 그림’으로 생각을 키워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캔버스에 물감을 쌓아가면서 그것이 화가로서 자연스러운 욕심이라고 스스로 격려했다. 한국현대미술의 의미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5)”
◇규랑 오유화(Oh You Hwa, 1953~)
충남아산출신화가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수료했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파리, 도쿄, 베이징, 상해, 이태리 등지에서 다수 개인전을 가졌다. 충북음성 대형작업실에서 ‘사계절 장생도’작업을 맹렬하게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1)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이충렬 지음, 김영사.
3)풍경 뒤의 풍경, 최하림 시-햇빛 한 그릇, 문학과 지성사.
2),4),5)=오유화, 나와 사계절 장생도(四季節 長生圖), 2024.
[글=권동철, 12월30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