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숯, 검은 옷, 대(大) 붓, 무언가를 담았다가 쏟아 부은 눕혀진 바케쓰, 시골담장을 떠올리게 하는 기호로 서술한 작품과 만난다. 작가가 가장 본질적 사유를 캔버스 앞에 풀어놓으며 반복해 그어나가고, 붓을 휘저으면서 표출했던 어떤 회로, 흔적, 기억의 표상들이 무한의 곡률(曲律)로 펼쳐진다.
서울한남동 소재, 모제이 갤러리(Mo J Gallery)‘를 찾았다. 점, 선, 면으로 풀어가는 응축의 기하학 ‘Like-150mm Moment:반복의 영속’ 제이영 개인전은 9월4일 오픈, 12월8일까지 열린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시대는 변하여도 나의 고향예천에서의 기억은 생생하다.
흙, 나무, 돌, 화로의 숯, 보글보글 끓던 청국장 냄새, 미니멀적 담장 그리고 오브제(objet)…1)”
화면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생의 여정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로드맵처럼 영속되는 반복의 선(線)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특유의 곡선을 품은 한국전통 숯(Charcoals)이 인도하는 선의 궤적은 끝없는 여백의 공간감을 열어준다.
숯을 회화적 물성으로 끌어들인 자연의 농담(濃淡)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본향이 기억하는 바람과 눈보라와 따스한 햇살아래의 기억을 숯의 마티에르로 극대화시킨 화면은 생성과 소멸의, 흐릿한 멍울의 자국으로 영속(永續)을 꿈꾼다.
“형상이란 형상 없는 것의 흔적이다. 형상 없는 것이 형상을 배태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우리는 ‘아름다움’의 제일 본성이 무형의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2)”
◇환원의 시간 기억의 흔적
장면(scene)처럼, 견고한 돌의 찌그러짐 위로 윙윙 바람 스친다. 무의식적으로 내면에 일렁이던 흔적(trace)이 조심스럽게 떠오른다. 평평하고 플랫(flat)한 반복의 어떤 뭉개짐…. 순수직관(pure intuition)이 본질을 통과하며 희로애락의 완곡한 궤적을 열어 놓는다. 모든 것이 찰나인 때, 창밖에 후드득 비가 뿌리고 재빠르게 어떤 기호가 메모되고 있었다.
“오직 이 예술만이 우리 자신의 인생을 타인을 위해서 표현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 인생은 ‘관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찰의 대상이 된 외관은 번역되고, 많은 경우에 거꾸로 읽히고 힘들게 해독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 정념, 모방심, 추상적 지성이 했던 작업은 예술에 의해서 타파될 것이다.3)”
[글=권동철, 12월1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참고문헌]
1)제이영 작가(J Young painter, Jay Young painter), 숯과 나의 작업, 2024.
2)비밀의 취향(Le goût du secret),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마우리치오 페라리스(Maurizio Ferraris) 지음, 김민호 옮 김, 이학사.
3)프루스트를 읽다, 정명환 지음,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