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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박동윤‥이치와 수양 고요의 한국미[박동윤 작가,Park Dong Yoon,박동윤 화백,Park Dong-yoon painter,권동철]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12. 8. 20:09

Affectionate Things(애정이 깃든 사물들), 194×112.5㎝ Hanji on Canvas, 2024. 사진=이만홍.

 

“만약 당신이 나무에 못을 박는다면, 나무는 당신이 어디를 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그때 우리는 나무가 등방성(Isotrope)이 아니라고 말한다. 텍스트 역시 등방성이 아니다. 그 가두리며 틈새는 예측불허의 것이다.…구조적 분석(기호학) 역시 텍스트의 가장 미세한 저항이나 그 결의 불규칙한 모양을 인정해야 한다.1)

 

130×89.5㎝, 2024. 사진=이만홍.

 

화면은 고요하지만 내적으로 어떤 뉘앙스가 일렁인다. 심연으로 들어 온 한 줄기 빛살에 청록의 해초가 하늘거리듯 미묘한 컬러의 율동이 호흡의 시그널을 보내온다. 캔버스 위 3㎝이상 튀어나온 ‘날’은 두껍고 얇은, 희고 검은 등 색한지 겹침을 통해 구축된다. 작가는 여러 겹으로 두터운 물성을 만들고 다시 얇은 한지를 붙여 일정하게 솟아오른 군집형태를 만드는 노동에 집중한다.

 

‘날’ 아랫부분은 숨겨진 질서로 정연하고 견고한 밸런스로 유지된다. 이 다층적 깊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 색채 등 여러 변환을 느끼게 하는 다원화된 아름다움을 발현한다. 반면,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솟아난 ‘날’은 자유로운 그리드(Grid)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단순 간결하게 응축시킨 선, 면, 질료 나아가 정신적 요소의 서정적 한국성을 포용한다.

 

53.5×73.5㎝, 2024. 사진=이만홍.

 

이처럼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한 시선의 확장은 흥미로움을 유발하고, “상징적인 기호들의 표상체계, 명시적이며 코드화된 체계는 강한 형식주의를 보여준다. 체계 속에서 기술되는 형식들은 순수하게 개념적인 성격을 보이며 고정되어있고 완결되어 있는 무엇이다.2)

 

또한 입체 ‘날’들이 만드는 실루엣은 상상공간의 여백이다. 한지반투명성에 스미는 빛은 고혹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뿜어내며 시간의 자국을 품는다. 작가는 이 성질을 응용하여 회화성을 극대화하고 ‘날’의 미학가치를 더욱 강렬하게 견인해 나간다.

 

(왼쪽)Affectionate Things, 194×112.5㎝ Hanji on Canvas, 2024. (오른쪽)194×112.5㎝, 2024. 사진=이만홍.

 

◇다층적 깊이 필획의 체화

박동윤 화업 40년 동안 지속해 온 ‘애정이 깃든 사물들’ 테마는 일관되게 한국자연의 물성을 형상화하기 위한 전제를 내포해 왔다. 이 관점에서 ‘날’ 알레고리에 필획(筆劃)의 서예성이 드러나는 것은 이미 체화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한편 “수양을 통해 평정심으로 돌이키는, 완곡하게 펼쳐지는 색채미학의 구현.3)”이라는 박동윤 화백 말처럼 ‘날’은 스스로 일체의 망상을 걷어 낸 무심의 상태에서 바라 본 자연성의 표상이다. 이른바 사의(寫意)의 정신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느껴보는 한국현대미술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大直若屈(대직약굴), 大巧若拙(대교약졸), 大辯若訥(대변약눌). 가장 곧은 것은 굽은 것처럼 보이고, 가장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으며, 가장 뛰어난 웅변은 어눌한 것처럼 보인다.4)

 

[참고문헌]

1)텍스트의 즐거움(La plaiser du texte), 등방성( 등방성),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 김희영 옮김, 동문선.

2)담화기호학(sémiotique du discours), 자크 퐁타뉴(Jacques Fontanille) 지음, 송태미 옮김, 그린비.

3)박동윤 작가, 무념무상과 색채미학, 2024.

4)도덕경,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

 

[글=권동철, 12월7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