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현상학자들이 말하듯 세상에 있음이다. 나는 감각 속에서 되고 동시에 무엇인가가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의하여, 하나가 다른 것 속에서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이 신체는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이다.1)”
화면은 어떤 찰나가 포착된 스틸 컷 같은 동시간성의 이미지다. 실제의 형체는 즉각적으로 인지하여 경험적인 정서로 안내하지만 그 아래지점에서 생성되는 간극, 바로 찢겨진 공간에 눈길이 꽂힌다.
미증유(未曾有)의 꽃봉오리, 부조리의 흔적이 갈피에 말려진 듯 그곳은 완전히 열려있거나 그렇다고 닫힌 것도 아니다. 주류(主流)도 아니며 정형화된 법칙도 없는 다분히 촉각적 느낌의 기호, 물방울을 투과한 오묘한 빛살,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남긴 어떤 그림자의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아직은 미미한 무엇이 생존하듯 꿈틀거리는 이 미묘하고도 모호한 뉘앙스는 호젓한 길을 천천히 맨발로 걸어가는 정화의 프롤로그, 수직으로 튕겨 오르는 역동의 파문처럼, 현상을 품은 일체로써 환기(喚起)되고 증폭시킨다.
“‘우주’속에서는 모든 것이 메아리이다. 만약 새들이, 몽상적인 몇몇 언어학자의 말대로, 인간에게 영감을 준 발성주체(Phonateur)라고 한다면, 새들 자신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한 것이다.2)”
부연하면 작가가 포착해 낸 이 직관은 일상 너머 또 다른 현실을 내포한 은유를 읽어내는 것에 다다르고 이질적 요소의 병립은 “기호들 간의 분화(diférenciation)원리를 터득하며 그와 동시에 기호의 의미(le sens du signe)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3)”
그럼으로써 관람자에게 선종선 화백 ‘layer’연작 구조에 대한 감각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한다. 그것은 매우 곡진한 일상을 읽어내는 노동의 원천적 힘이기도 하고 상투적 관념을 전도시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의식으로 확장시킨다.
“결국은 두 개의 순간들을 가진 하나의 시간적인 돌발표시이다. 하지만 이 돌발표시는 이 두 순간들을 분리할 수 없도록 함께 결합한다. 즉 거기서 기하학은 ‘뼈대’이고 색채는 감각, 즉 ‘착색감각’이다.4)”
◇낯섦의 문맥 관조의 서사
이렇게 동일한 화면에 시공간적 상황이 다른, 두 개를 대비시킴으로써 유기적 상태로 변환된다. 이때 관객은 비일상적 풍경과 마주하게 되고 생경한 느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문맥적 연관성이 없는 두 상황의 임의적 병렬을 통해 빚어지는 회화적 서사는 관객의 성향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읽혀지게 된다.
“두 공간의 충돌로 인해 표출되는 또 다른 의미의 낯선 공간, 그 문맥을 유발하는 이른바 회화적 앙장브망 기법이…5)”여기에 스며있다. 웅혼한 획(劃)의 정신성을 뿜어내는 듯한 아름드리 나무기둥의 풍상흔적, 옅게 드리운 안개숲길의 아우라가 화면에 흐르는 어떤 맥(脈)의 상관성과 작동하는 구조로써 일상너머의 관계성을 읽어내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작은 냇물을 본다는 것은 먼 몽상을 다시 소생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몽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6)”
[글=권동철, 2월5일 2025, 인사이트코리아 2월호]
[참고문헌]
1),4)감각의 논리(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질 들뢰즈(Gilles Deleuze)지음, 하태환 옮김, 민음사.
2),6)물과 꿈,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지음,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3))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5)선종선 작가, 나의 작업과 앙장브망(enjambement) 기법,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