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verlap, 90.9×72.7㎝ korean paper on canvas, 2005
스승의 문하에서 7년여를 수학한 후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동안 구상작품을 했었는데 대학원에서 지도하시는 이두식 교수님을 비롯하여 비구상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다.
필자가 구상작품을 가지고 가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50~60년대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좋은 그림과 잘 그린 그림은 다르다’라는 말에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그림을 찾으라’는 말을 들었는데 귓가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72.7×60.6㎝, 2006
고내의 시간이 더 깊어만 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는 한지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지와 조각보를 같이 합쳐서 작업해보면 어떨까 해서 작업을 했는데 뜻밖에 처음으로 서승원 교수님에게 칭찬을 들었다.
나는 붓으로 그려야만 회화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회화라는 것이 꼭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회화성이 느껴지면 회화”라면서 칭찬해 주셨다. 특히 한지에 대한 활용을 중심으로 나의 작품으로 수업을 진행하셨고 호평해주셨는데 큰 용기를 얻었다.
▲ 116.7×91.0cm, 2008
또 모노톤(단색화)그림 작업을 하시는 김태호 교수님은 나의 구상작품 앞에서는 그냥 지나치셨다. 그러나 비구상 작품 앞에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한번은 4작품 정도 작업해 갔었는데 수업 끝나고 나가시면서 “이것 준비해서 개인전을 해도 좋을 것 같다”라는 말씀을 주셔서 굉장한 힘을 받았다.
그래서 구상을 접고 한지를 한 5년 정도했다. 작품은 한 번도 발표를 안했다. 다만 필자가 회원인 와우이즘(wawooism)그룹전시에 발표한 바 있다. 한번은 수도권 대학의 교수님 한분이 학생들에게 필자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라는 과제를 낸 적도 있었다.
▲ 116.8×91cm,2008
작품의 제목을 ‘오버랩’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서양의 캔버스 위에 동양적 재료를 붙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조각보와 문창호지가 겹쳐져서 오버랩이라는 제목을 썼다. 서양의 유리창은 직접적으로 보이는데 동양적 한지에서 들어오는 빛의 신비로움을 담아내고자 했었다.
그러나 한지작업은 50호 이상 큰 작업에 한계가 있었다. 얇은 실크한지를 붙이면서 조형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엷은 습자지 같은 종이라 물이 조금이라도 묻어 찢어지면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었다. 소맥분을 사용해 풀을 맹물같이 얇게 붙이는데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을 하다 보니 다시 유화냄새가 다시 맡고 싶었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4년 9월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