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93년까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고군분투했던 한국미술가들과 커미셔너를 재조명하는 ‘The Journey to the Venice Biennale:1986-1993’ 전시가 지난 9월3일 오픈, 10월26일까지 서울서초구 신논현역 인근 ‘스페이스21 갤러리’에서 성황리 전시 중이다.
이번전시참여 작가는 고영훈, 김관수, 박서보, 조성묵, 하동철, 하종현, 홍명섭 7명으로 이 중 고영훈-1986년 제주도립미술관소장, 하동철-1985년, 박서보-1988년 세 작품은 당시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오리지널이다.
이번전시를 기획한 정연심 교수(홍익대학교 예술학과)는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설립된 지 30주년 되는 뜻깊은 해이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설립 이전 고군분투했던 한국미술가들과 커미셔너의 자료와 기록들을 통해 비평적 공간을 다시 형성하고자 한다.”라고 의미 부여했다.
◇1986~93년간 4명 커미셔너와 7명 작가참여
1980년대 후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설립, 해외여행자율화, 88년 서울올림픽개최, 93년 대전엑스포 및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휘트니비엔날레 등 범국가적 차원의 국제행보가 이어졌다.
그 흐름에서 1895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은 △1986년 제42회에 처음 참여하게 되는데 미술비평가 이일이 첫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고영훈과 하동철을 작가로 선정하였다. 이후 △1988년 커미셔너 하종현이 박서보, 김관수 △90년 커미셔너 이승택이 조성묵과 홍명섭 △93년 커미셔너 서승원이 하종현을 선정하였다. 1986~93년까지 총4명의 커미셔너와 7명의 한국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후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설립이 본격 추진된다.
◇이일 커미셔너-제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 참관기(요약)
“오프닝 식장은 비엔날레 전시장 구내 지아르디니(Giardini)공원 안 우거진 나무들에 둘러싸인 한 쪽 공간에 마련된 가설야외식장이다. 이번 제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총 참가국은 42개국으로 전체참가작가 수는 팔백 명을 웃돌고 출품작품 수는 2200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국의 전시관을 비롯하여 이번에 새로 옛 병기창고를 개수한 아르세날레 전시관을 합하여 총 전시면적 삼만 평방미터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가히 세계적인 국제미술전이 아닐 수 없다.
∥독립된 우리 전시관건립 최우선과제
우리나라의 ‘베네치아비엔날레’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상 깊었던 건물을 들자면 공원입구의 출입으로 왼편에 가지런히 차례로 서 있는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관으로 모두가 아담하면서도 특색 있는 건물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결코 과시적인 규모가 아닌 것이 오히려 호감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출품국이 한 작가 내지는 두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출품케 하는 것이 전반적인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독립된 전시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자국관이 없다는 데 있었음은 분명하거니와 앞으로의 계속 참가를 위해서는 이 독립된 우리 전시관의 건립이 최우선의 과제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이 비엔날레의 초참자(初參者)인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관이 없는 탓으로 후진국대열에 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이들 일군의 나라는 지아르디니 공원에서 도보로 약 십분 거리에 세워진 거대한 옛 병기창고(아르세날레)를 보수한 가설전시장 속에 칸막이로 구획된 벽면이 배당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통로 양편에 칸막이로 구획된 각 전시실 중의 하나를 차지한 한국은 그 통로 너머로 공교롭게도 쿠바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 같이 십 평방미터 안팎의 전시 공간이다. 그쪽은 거대한 도끼의 날을 양쪽에 달고 그 안쪽을 쇠사슬로 엮은 스산한 오브제작품이고, 이에 반해 우리 측은 하동철(河東哲)과 고영훈(高榮勳)의 너무나도 완벽하게 마무리된 회화작품이어서 우연스럽게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설정과 투자
우리의 두 작가의 작품과 다른 나라 작품과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것은 작품마다 완성도에 있어서의 높은 질적 수준이 한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적 수준이 과연 현대미술의 국제적 경향 속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에게 주어진 보다 절실한 과제는 그 고도의 완성도라는 문제 밖의 다른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른 것, 그것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싶다.
우리나라 미술도 국제무대 진출에 있어,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자위하고 있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국제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투자를 말이다.1)”
[참고문헌]
1)이일 커미셔너, ‘1986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참관기-제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상), 미진사, 2013.
[글=권동철, 9월19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