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사진작가 이현권 ‘1년’연작 작품세계 평론요약 |쌓이는 시간의 단일한 얼굴 다채로운 상황-풍경의 애도(이현권, 이현권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5. 18:37

 

1-324, 50×75c-print, 2013

 

 

   

이현권이 찍은 풍경은 풍경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도로변에 위치한 흔한 야산이며 엇비슷하고 별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런 땅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동선 속에서 발견한 그 장면을 찍기 시작했다. 그곳을 오간 세월이 수년 인데 어느 날 그 풍경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다시 보인 것이다.

 

 

   

 516

 

 

   

작가는 문득 그 산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더불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익명의 존재들, 평범한 군중들, 지극히 무의미해 보이는 풍경, 하찮은 사물들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다.

 

저 산 역시 매시간, 계절마다 최선을 다해 변화를 거듭하며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숙명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자기 역할을 힘껏 해내고 있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 산은 감동스럽다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828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 동일한 장소를 촬영했다. 광선이나 각도, 톤의 조절 등은 무의미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무심하게 담았다. 사각형의 인화지에 가득 들어찬 풍경은 중심도 주변도 없다. 전면적으로 균질하고 평평하며 전일적인 시선 아래 평등하고 납작하다.

 

깊이가 사라진 화면, 프레임에 가득 찬 풍경은 오로지 땅과 나무와 풀을 보여준다. 봄에서 겨울까지, 아침에서 오후의 시간까지, 그리고 햇살과 안개, 비와 눈이 그 위를 채우고 비워내기를 거듭한다.

 

갈색에서 녹색과 분홍과 노랑, 혹은 흰색으로 물들이기도 하고 메마르고 삭막한가 하면 풍성하고 눅눅하기도 하다. 그것은 단일한 얼굴을 지니지 않고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재현될 수 없는 다채로운 상황을 안겨줄 뿐이다.

   

 

   

    1027

 

 

   

작가가 보여주는 시간은 걷잡을 수없이 빠르게 지나는 시간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에 가깝다. 여러 시간대가 쌓이고 누적되어 두께를 지닌 것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과거의 실체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 흔적으로 남아 이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1229

 

   

 

나는 이현권의 이 풍경사진을 보면서 더없이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쓸쓸하고 우울한 정서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잠시 몸을 내밀고 사라지는 자연의 소멸을 반복해서애도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산과 나무, 풀의 사라짐뿐만이 아니라 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자의 상실, 소멸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종국에는 다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현재 자신의 유한한 생애와 덧없는 풍경과 사물을 주의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이의 시선이 묻어나는 사진이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출처=이코노믹리뷰 2013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