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em-violet,117x910cm,mixed media on canvas, 2012
꽃향기 일렁인다. 불쑥 뜨겁게 타오르는 연민과 순정의 눈빛사이 흐르는 정감처럼. 황혼의 바다엔 꽃잎이 유난히 투명하다고 가슴시린 한마디를 남긴 채 뱃고동 너머 떠났다. 원망 같은 푸름이 출렁인다. 오, 어느 누가 이름 있어야만 꽃이라더냐. 비 내리던 밤의 우연이여!
가랑비 내리는 밤의 쓸쓸한 술잔이 지나고 아침 창가에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면 파르르 물기를 떨며 꽃잎이 열리네. 당신을 위한 당신은 모르는 기다림의 날들. 숭고한 마음결위로 한줄기 바람이 저린 미련으로 스칩니다. 빈 술병에 몸을 기대고 마음을 홀린 채 한정 없이 잠이 든 당신. 한 손에 꼭 움켜쥔 시든 동백꽃다발이 슬퍼요. 이 꽃은 누구를 위한 선물이었던가요. 스러져가는 기다림처럼 일순간 부풀은 나의 꿈이 단조로워집니다.
visual poem-red,130x130cm,mixed media on canvas, 2012
너무 정다워 봄날의 강물은. 물결위에 은빛 꿈들을 수놓아 새들을 부르고 경이로운 매혹의 빛깔 대지의 꽃들이 손짓하면 수줍은 듯 잔잔한 물결이 찰랑이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네. 강변의 길들은 정(情)으로 넘치는데 그대에 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해요. 꽃처럼 살아야 해. 한번을 살아도 피었다가지는 거야. 보드라운 모래밭을 뛰다가 소리 지르다 웃으면서 마음이 맑아졌지. 홀로 가는 길 위에 외로움처럼 흩날리는 저녁의 꽃잎들이 애처로운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네.
어디선가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제1번 C장조가 서정적 칸타빌레(cantabile)로 흐른다. 멜로디는 진지하고 아늑하게 여유로워요. 풍요로운 색채감이 내 원형의 정신이라는 씨앗을 발아(發芽)시키고 두 팔을 벌리면 싱그러운 자연의 입김들이 무상으로 생명력을 듬뿍 안깁니다.
visual poem-blue,117x910cm,mixed media on canvas, 2012
푸른 달빛에 반짝이는 새벽별들의 무리지은 이동을 바라보며 촉촉이 눈가가 젖어드는 비가(悲歌)의 흐느낌에 왠지 모르는 희망이 솟아납니다. 밤공기를 가르는 부드러운 선율이 가볍게 등을 두드리곤 사라져가네요.
“내 영혼이 나를 초대 했네 뿌리도 줄기도 꽃도 보이지 않는 나무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예전에 나는 정원에서 향기를 찾았었고 향긋한 풀잎이 담긴 항아리와 향기로운 그릇에서 그걸 찾았었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詩, 내 영혼이 나에게 충고했네>
탐스러운 꽃잎이 생명의 향기를 뿜어냅니다. 애수어린 정감(情感)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뜨거운 생애의 빛나는 언어들이 나를 가벼운 졸음으로 안내하네. 하여, 단잠에서 만나게 되리라. 순백의 눈(雪)을 뚫고 움트는 저 노란 꽃들의 열망을.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12월1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