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46㎝
그림도 네 그림자도 흔적이다. 사라진다는 것과 무(無)하고도 닮은 어떤 비움에서 우러나오는 시간의 탑(塔)을 둘러싼 하얀 아우라. 김태용 화백의 한국적 감성에서 배어나오는 오방색(五方色)이 오묘하게 열린다. 오, 심미공간을 파고드는 황홀한 저 색채의 본바탕은 빛!
겨자색 빛깔로 물드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뜨거웠던 시절의 감미롭던 바람을 떠 올린다. 깨끗한 하늘과 붉은 사과와의 조우(遭遇)는 이제 맑디맑은 가을의 신화가 됐다.푸름의 자리에 낙엽기운이 점점 물드는 과실을 떠받친 나뭇잎들 사이 아침햇살이 다소곳이 통과한다. 고상한 자태의 우아한 흑장미 향기가 금방이라도 톡 쏠 듯 동그랗게 회전하며 거만스럽게 강변을 지나갔다.
속이 뒤끓는 구름이 괄괄한 목청으로 킁킁거리며 두리번거리는 것을 목격한 물길을 빠져나온 은빛 물고기들이 망연자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재빨리 다시 들어갔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강변은 평화로웠다. 주인이 반짝이는 강줄기를 내려다보며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에 감동으로 젖어있을 때 온순하기만 하던 순백의 스피츠가 품안에서 심하게 짖어댔다.
90×46㎝, 2012
도대체 향기는 무슨 연유로 진하게 각인되는 것인가. 생(生)에 처음 불타는 질투심을 누른 복종심의 역설(逆說)은 또 무엇으로 위로가 될 것인가. 싱그러움의 시간이 침묵의 계절을 맞이할 때의 경건함처럼, 축제의 환희 속에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환상(幻想)이 바람에 부드럽게 스러지는 하얀 털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윽고 저마다 사연들을 안고 재깍거리는 회전을 튕겨 오른 시간의 영원성이 우주의 공간을 자유로이 비행(飛行)하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무심히 왔다 혹 보이지 않는 우연처럼 낙엽 한 장이 가을의 창밖으로 느리게 지나갔다. 잿빛 저녁은 점점 찬바람을 우우 몰고 명상에 잠긴 황갈색 고추잠자리로 밀려왔다. 부유(浮游)하던 나뭇잎이 추위를 막아줘야 한다는 모성적 사랑으로 음각(陰刻)처럼 곤충의 전신을 덮어주었다.
맹렬하게 산다는 것과 간절한 어떤 소망사이 불가사의 한 뜨거움. 가을인가 하면 겨울 오듯 절묘함과 안도감의 추상적 관념사이 몇 만남과 이별의 애모(愛慕)에 세월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고독한 사람이란 그 한가운데에 서서 부끄럼 없이 눈시울을 적시는 자(者)이라고 누군가 소리쳤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없었다.
흰색을 위하여, 72.7×53㎝, Acrylic on canvas, 2009
자욱한 안개숲속 바람이 산책을 보챈다. 잠시 후, 팔락팔락 엽서 한 장이 눈앞에서 멀어져 간다. 몇 개의 단어가 있었지만 흐릿해 볼 수 없는 흔적. 아아,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알싸한 향기가 백일몽(白日夢)처럼 배어들었다.
그때 고요한 새벽 첼로 선율이 산을 넘다 폭풍우를 만나는 듯 로시니(G. A. Rossini) ‘윌리엄 텔 서곡’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유성(流星)이 눈처럼 쏟아졌다. 그 하늘을 달리는 밤기차가 내뿜는 연기사이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채집하는 낙엽들이 연신 휙휙 날아올랐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10월2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