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 NO.2, 100×65.2cm, 2011
전완식의 작품에는 극사실적 표현기법과 초현실적인 화면분위기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전완식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특히 아르누보(art nouveau)에서 꽃 핀, 옷 주름 표현양식인 드레이퍼리(drapery)는 작업의 중요한 팁이 되고 있다.
바다는, 숲은 태양과 별들의 광원(光源)으로 깨어났다. 꽃과 당신 그리고 내 심장은 이제 하나다. 빛이 투과한 자연의 눈부신 서곡은 생명을 부양(扶養)했다. 월계수 덤불 속 알을 품은 새처럼의 여인. 관용정신과 조화와 완전을 중시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처럼 낙원엔 승리의 빛이 찬란하다.
보이지 않으려 살짝 구긴 자세의 기색이 역력한 옅은 숨김. 그러나 끌림이란 표정에 먼저 드러나는 것인가. 장미 화단이 있는 우물가. 차디찬 샘물을 주르르 부으면 움칠 오그라드는 보드라운 꽃잎 결 같은 어깨 선. 끝내 매만질 수 없는 욕망의 종소리가 땡그랑땡그랑 요란하게 울릴 때 허공으로 날아가는 불태운 절망의 연기….
Beauty is an intense diffusion! NO.15, 72.7×60.6cm Oil on Canvas, 2009
“미묘한 사색이 동류(同類)인 대기와 섞이지 않고서야 하늘의 일을 어찌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대지에서 위를 쳐다보아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느니라.”<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천병희 譯>
해안의 잔잔한 물가에 불현듯 보글보글 거품이 일더니 꽃 한 송이 활짝 피어나는, 꿈을 꾸었다. 익살처럼 방탕하듯 용암같이 솟구치는 잿빛너울의 부력(浮力)으로 막 떠오르려 했다. 간절한 표정으로 가능한 한 길게 한 손을 뻗기는 했지만 형형한 불멸의 명성을 증명하듯 장미의 이름으로 사뿐하게 출렁일 뿐이다. 아아, 울먹이며 묻는다. ‘운명을 향해 가는가, 신(神)께 물으려 하느냐!’
프렉탈 몽환시리즈-희망을 심다 No.3, 72.7×50cm, 2010
하나의 물방울 엉키어 구름 된다. 까마득히 긴긴 세월 비를 만들어 마음의 소용돌이 녹인 자리. 빛과 물방울 섞인 순결의 맨살에 밀려오는 원초적 욕망의 코발트블루. 꽃과 구슬처럼 튕겨 오르는 물방울의 투명한 속살은 언제나 영롱했다. 더욱 물결은 출렁이고 방울들은 장미의 겹겹 흰 살결에 뒹굴었다.
중년 저음(低音)처럼 굵직한 물의 울림이 맴돈다. 돌연히 갈매기 한 마리가 지나다 수직으로 추락했다. 참을 수 없는 달콤한 유혹. 온몸이 젖은 채로 빛과 소리, 일체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그러면서 생생하고 산뜻해지는 것. 곧 궁극의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의 샘’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조용히, 비틀거리며 창공을 다시 날아오르는 갈매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8월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