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전시장 IN]伊 베니스비엔날레 첫 물꼬 튼 이일 미술비평가와 1986-1993[스페이스21 갤러리,서양화가 고영훈, 김관수, 박서보, 조성묵, 하동철, 하종현, 홍명섭]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9. 19. 20:45

(위 왼쪽부터)1986년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 로고 아래에서 왼쪽부터 이석주, 이탈리아 공보관, 이일, 윤명로, 고영훈, 1986.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 시상식, 자르디니에서 서양화가 고영훈, 1986. 이일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 1986년. 제43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왼쪽부터 유형택, 한진섭, 박사보, 하종현, 1988년. (아래 왼쪽부터)제43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 김관수, 1988년. 제44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 홍명섭, 1990년. 제44회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이승택, 1990년. 제45회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서승원, 1993년. 전시영상촬영=권동철.

 

 

1986~93년까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고군분투했던 한국미술가들과 커미셔너를 재조명하는 ‘The Journey to the Venice Biennale:1986-1993’ 전시가 지난 9월3일 오픈, 10월26일까지 서울서초구 신논현역 인근 ‘스페이스21 갤러리’에서 성황리 전시 중이다.

 

이번전시참여 작가는 고영훈, 김관수, 박서보, 조성묵, 하동철, 하종현, 홍명섭 7명으로 이 중 고영훈-1986년 제주도립미술관소장, 하동철-1985년, 박서보-1988년 세 작품은 당시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오리지널이다.

 

이번전시를 기획한 정연심 교수(홍익대학교 예술학과)는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설립된 지 30주년 되는 뜻깊은 해이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설립 이전 고군분투했던 한국미술가들과 커미셔너의 자료와 기록들을 통해 비평적 공간을 다시 형성하고자 한다.”라고 의미 부여했다.

 

전시전경. (오른쪽)박서보=Ecriture(묘법) No, 88120, 1988, Mixed media with Korean hani❘ paper on canvas, 97×130㎝. 사진=권동철.

 

 

◇1986~93년간 4명 커미셔너와 7명 작가참여

1980년대 후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설립, 해외여행자율화, 88년 서울올림픽개최, 93년 대전엑스포 및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휘트니비엔날레 등 범국가적 차원의 국제행보가 이어졌다.

 

그 흐름에서 1895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은 △1986년 제42회에 처음 참여하게 되는데 미술비평가 이일이 첫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고영훈과 하동철을 작가로 선정하였다. 이후 △1988년 커미셔너 하종현이 박서보, 김관수 △90년 커미셔너 이승택이 조성묵과 홍명섭 △93년 커미셔너 서승원이 하종현을 선정하였다. 1986~93년까지 총4명의 커미셔너와 7명의 한국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후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설립이 본격 추진된다.

 

(정면 벽)하동철=Light 84-P2, 1985, Acrylic on canvas, 220×763㎝ 중 부분(7폭 중 3폭). (바닥)홍명섭= Level casting, 1986-2018, Cotton cord, Dimensions variable, 400×200㎝. 사진=권동철.

 

 

◇이일 커미셔너-제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 참관기(요약)

“오프닝 식장은 비엔날레 전시장 구내 지아르디니(Giardini)공원 안 우거진 나무들에 둘러싸인 한 쪽 공간에 마련된 가설야외식장이다. 이번 제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총 참가국은 42개국으로 전체참가작가 수는 팔백 명을 웃돌고 출품작품 수는 2200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국의 전시관을 비롯하여 이번에 새로 옛 병기창고를 개수한 아르세날레 전시관을 합하여 총 전시면적 삼만 평방미터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가히 세계적인 국제미술전이 아닐 수 없다.

 

(왼쪽부터)서양화가 고영훈=스톤북, 1986, Acrylic on paper, 114×146㎝, 제주도립미술관 소장. 고영훈=스톤북, 1986, Acrylic and collage on paper, stone, 126×97㎝. (오른쪽)고영훈 작가=몽중호(夢中壺)24-6, 2024,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95×108㎝. 사진=권동철.

 

∥독립된 우리 전시관건립 최우선과제

우리나라의 ‘베네치아비엔날레’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상 깊었던 건물을 들자면 공원입구의 출입으로 왼편에 가지런히 차례로 서 있는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관으로 모두가 아담하면서도 특색 있는 건물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결코 과시적인 규모가 아닌 것이 오히려 호감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출품국이 한 작가 내지는 두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출품케 하는 것이 전반적인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독립된 전시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자국관이 없다는 데 있었음은 분명하거니와 앞으로의 계속 참가를 위해서는 이 독립된 우리 전시관의 건립이 최우선의 과제라 생각된다.

 

(위 왼쪽부터)김관수=블랙박스 무제4, 1988, Mixed media, 92×10×6㎝. 김관수=무제, 2019, Mixed media, 90×90㎝. (아래)김관수=블랙박스 무제2, 1988, Mixed media, 100×44×7㎝. 사진=권동철.

 

 

우리나라는 이 비엔날레의 초참자(初參者)인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관이 없는 탓으로 후진국대열에 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이들 일군의 나라는 지아르디니 공원에서 도보로 약 십분 거리에 세워진 거대한 옛 병기창고(아르세날레)를 보수한 가설전시장 속에 칸막이로 구획된 벽면이 배당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통로 양편에 칸막이로 구획된 각 전시실 중의 하나를 차지한 한국은 그 통로 너머로 공교롭게도 쿠바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 같이 십 평방미터 안팎의 전시 공간이다. 그쪽은 거대한 도끼의 날을 양쪽에 달고 그 안쪽을 쇠사슬로 엮은 스산한 오브제작품이고, 이에 반해 우리 측은 하동철(河東哲)과 고영훈(高榮勳)의 너무나도 완벽하게 마무리된 회화작품이어서 우연스럽게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왼쪽)하종현=디테일(detail) (오른쪽)하종현=Conjunction90-191, 1990, Oil on canvas, 120×189㎝. 사진=권동철.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설정과 투자

우리의 두 작가의 작품과 다른 나라 작품과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것은 작품마다 완성도에 있어서의 높은 질적 수준이 한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적 수준이 과연 현대미술의 국제적 경향 속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에게 주어진 보다 절실한 과제는 그 고도의 완성도라는 문제 밖의 다른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른 것, 그것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싶다.

 

우리나라 미술도 국제무대 진출에 있어,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자위하고 있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국제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투자를 말이다.1)

 

[참고문헌]

1)이일 커미셔너, ‘1986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참관기-42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미진사, 2013.

 

(왼쪽 앞)조성묵=MESSENGER, 1997, Bronze, 125×70×70㎝. 뒤 벽 왼쪽부터 조성묵=MESSENGER, 1994, 종이 위에 먹, 78×55㎝. 조성묵=MESSENGER, 1993, 종이 위에 먹, 74×55㎝. 사진제공=스페이스21 갤러리. (오른쪽)전시장에 마련된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 포스터와 1986~1990년까지 베니스비엔날레 아카이브. 사진=권동철.

 

 

[글=권동철, 9월19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