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

[권동철의 화가탐방]서양화가 이태현④‥‘미로’연작,‘무한대’협회전, 관훈갤러리, 1970~1985년, 서승원, 최명영, 최창홍, 하종현 [Lee Tae Hyun,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이태현 미술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3. 1. 18:32

 

제2회 무한대 협회전(문예진흥원미술회관,1976). 사진제공=이태현.

 

1970년대 나의 ‘Space’시리즈 작업은 사회공간이 아니라 우주와 지구에 대한 공간에 대한 표출이었다. 1969년 발사 된 아폴로11호(Apollo 11)가 달에 가고 그것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던 영향도 받았다. 흑백작업이 많았는데 칼날 같은 선묘(線描)가 지나가는 작업들이 198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어졌다. 나는 빛이 먼동이 트고 다시 저녁이 되면서 해가 사라지는 천체운행을 생각했었다.1)

 

왼쪽부터 최창홍, 이태현, 하종현. “1970년 오리진 전시로 기억된다.”라고 이태현 화백은 말했다. 사진제공=이태현.

 

‘Space’연작에서 ‘미로(迷路)’작업은 대학 다닐 때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의 친필 발문(跋文)이 있는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를 여러 번 봤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작업을 해야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내가 본 것도 사실 흑백이었는데 내가 그걸 좋아했다. 단색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항상 단색으로 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대학 졸업 후 흑백으로 그렸다. ‘미로’라고는 했지만 ‘무이구곡도’에서 영감을 얻었다.2)

 

이태현 화백이 소장하고 있는 카탈로그 표지모음.

 

“그렇게 <미로> 시리즈가 선보인다(1972, 73년경). 패턴과 반복에 기초한 이후 작가의 작업의 모태가 되는 작업으로 볼 수 있겠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일종의 띠 회화 혹은 스트라이프 회화로 명명할 만한 경향성의 회화 (1998년경)와, 기하학적 패턴과 격자구조의 변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경향성의 회화(2001, 2002년경)를 선취하면서 예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미로>라는 제목인데, 흔히 삶은 미로에 비유될 만큼 삶에 관한 한 미로는 가장 전형적인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경우와는 비교되는 형식논리에 천착한 추상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현실 혹은 삶의 현장을 반영한다는 작가의 무의식적 의지가 표출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3)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Space2, 40&times;40㎝, Silk screen on Paper, 1973. Space7623, 100&times;80㎝, Oil on Canvas, 1976. Space7742, 145,5&times;112.1㎝ Oil on Canvas, 1977. Space 85125, 145.5&times;112.l㎝ Oil on Canvas, 1985.

 

“이태현의 화면은 이쪽저쪽을 연결하는 공간적 개념의 획득이 아니라 평면 자체를 열어 보임으로서 평면이 평면인 한의 구조적본질을 재확인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의도야말로 평면(平面)의 구조(構造) 내지는 구조(構造)로서의 평면(平面)을 의식하려는 한 시대적 공감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점은 그가 무동인(同人)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자기 위치를 잃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지나치게 자신을 돋보이려는 제스쳐를 쓰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차분히 자기 일을 밀고 나가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일시적인 것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라 작가의 오랜 체험을 소중히 여기는 장기적인 과정의 타입이다. 그동안의 작품들을 가지고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도 그러한 한 작가의 체험의 성숙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러한 체험의 성숙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척될 것인가를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4)

 

관훈갤러리 이태현 개인전(1984). 왼쪽부터 이태현, 서승원, 최명영. 사진제공=이태현.

 

 

[참고문헌]

1)이태현 작가 작업실에서 인터뷰, 권동철 대담, 2023.

2)이태현 작가 작업실에서 인터뷰, 권동철 대담, 2023.

3)고충환 미술비평, 이태현의 회화-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21.

4)오광수 미술평론가, 생성과 질서-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