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25)‥부친의 리얼리즘예술관 영향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3. 7. 19:41

  이해랑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가족



3남 이석주

화단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을 받으면서 이석주 작가의 화풍은 극사실적(極寫實的) 리얼리즘을 넘어 초현실세계 추구로 빠져들게 된다. 그는 화단으로부터 대단히 유망한 작가로 인정받자마자 숙명여대 회화과 교수로 초빙되어 안정적인 직업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는 곧바로 아시아 비엔날레의 금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화단의 총아(寵兒)로 부상했다.

 

이처럼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친의 리얼리즘 예술관에 깊이 영향을 받은 셈이 되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새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 방향은 견고한 리얼리즘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인간의 고독과 서정을 주제로 한 구상의 현대화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그는 선친과 마찬가지로 인간 내면을 서정주의로 승화시켜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단히 정력적인 그는 40의 젊은 나이에 개인전을 여섯 번이나 가진 바 있고 프랑스(문명 文明)비평전), 일본(도쿄아트엑스포), 유고슬라비아(한국현대회화 전), 미국(시카고아트페어), 이탈리아(한국현대미술전) 등 세계 각국의 전시회에 출품했으며 서울국제현미술제, 전환시대 미술의 지평전, 범생명적 초월주의 서울미술대전, 한국현대미술 주소찾기전 등의 초대작가로서 출품한 바도 있다.

 

이석주 작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후쿠오카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선재미술관, 모란미술관 등에 소장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그의 그림이 극사실적 표현과 인간내면 표출 및 서정주의로 흐르면서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대단히 선호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높은 예술성과 함께 대중성 작품을 발표하는 이석주 화백은 문학적 감수성까지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서 각 신문사로부터 인기 소설의 삽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김주영(金周榮)의 대하소설 아리랑난장의 삽화는 유명하다.

 

차녀 이은숙

5남매 중 막내 은숙은 가장 귀엽게 자랐다. 이해랑이 문화계의 지도자로 활동할 시기에 성장했기 때문에 가정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음악에 특별히 재질(才質)이 있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잘 쳐서 이화여자학교 음악과에 진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했다.

 

미모에다가 신앙심이 깊고 얌전한 성격이라서 사회활동보다는 가정 가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건실한 청년(박정헌)과 결혼했다. 그녀는 조선무역주식회사 로스앤젤레스 지사장으로 있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차녀 은숙 역시 선친에 대한 기억에서 우리 집에는 아버지 손님들이 자주 오셔서, 그리 크지 않은 집이 늘 북적거렸다. 자칫 예술가가 빠지기 쉬운 괴팍함 때문에 겪는 대인관계의 어려움도 전혀 없으셨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즐기셨다. 특유의 온유함과 미소로 내 친구들에게도 많은 점수를 얻으셨고, 때론 술 취하신 모습에서 호탕함과 쾌활함을 나타내신 또 하나의 야누스 모습을 보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는 따뜻한 아랫목을 서로 차지하면서 웃음과 많은 대화, 작은 싸움들이 있는 사랑의 공동체였다면서 현실적인 문제와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작지만 야무진 엄마가 주로 담당하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깊게 심어주신 고도의 테크닉 (Technic), 연출가의 기질일까?

 

자신만의 세계에 파묻혀 사시면서도 부부사이의 아름다운 모델(Model)로 우리에게 비춰주셨기에, 이 험하고 메말라가는 세상에서 우리 형제들 모두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주어진 삶에서 성실하고, 튀지 않으려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고 회상했다.


2019227일자 데일리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