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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24)‥아버지 목소리!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3. 7. 19:37

            삼남 석주와 함께



3남 이석주

가친의 작품에서 남보다 일찍 예술에 개안한 석주는 장차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로 진학케 된다. 그가 미술대학으로 진학하는 데는 가친의 충고가 절대적이었다. 석주가 미술대학에 진학 한 후에도 그의 3남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러나 석주는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부친의 예술관에 동의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그가 대학에서 접하는 회화운동은 아버지의 예술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포스트모던이라든가 민중미술(民衆美術) 등 실험성 강한 신미술운동을 주로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리얼리즘을 고수하는 아버지의 예술관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집요하게 설득하는 아버지의 리얼리즘 예술론을 귓전으로 듣고 한동안 신미술운동주변을 기웃거리는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더욱 그를 가까이 붙잡았다. 극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연이 끝난 뒤 카페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격렬하리만큼 토론을 벌이는 날이 많았다. 집에서도 밥상머리에서도 리얼리즘 예술론은 계속되었다. 그런 처지의 석주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76년에 서양화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1981년에 수료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회화 세계에 깊이 침잠할수록 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려오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던 점이다. 더욱이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출신의 재원(황미원)과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아리따운 딸(사라)을 두면서 진정한 회화에 두 번째 개안을 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친처럼 인간 내면의 진실까지를 이석주 작가로서 자신의 회화 세계에 투영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는 이미 젊은 나이에 국전(國展)에 출품하여 특선을 했고, 중앙미술전에서 장려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서양화가 이석주로 화단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2019년 2월27일자 데일리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