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Kim Chung Sik〕한국화, 한국화가 김충식①|보통사람들의 삶 (김충식, 김충식 작가, 화가 김충식, 김충식 화백, 크로키,金忠植,의경,意境)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7. 1. 12:10

 

모자(母子)의 오후, 130×160한지에 수묵담채, 1989

    

 

 

한국화가 김충식(Artist, Kim Chung Sik)작가는 수십 년 간 산수풍경을 그리고 연구하면서 전통산수화의 상징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의경(意境) 세계의 깊은 탐구를 통하여 한국화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에 노력해 오고 있으며 그의 설경산수화는 그만의 독특한 성취로 주목받고 있다. 본문의 는 필자를 지칭한다.

 

 

      

필자는 이 시절 한국화의 기본을 읽히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작품의 표현능력을 기르기 위해 인물, 동물, 정물 등 다양한 소재를 섭렵(涉獵) 했다. 그리고 충북미술대전 최우수상 금상을 비롯해 중앙미술대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 입선했는데 이러하듯 여러 공모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휴일, 130×160, 1988

 

 

 

일상적 삶 그 표현감각

움직이는 소재를 찾기 위해 과천대공원을 찾아가 멧돼지 앞에서 며칠 동안 크로키(croquis)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움직이는 상황은 순간적으로 포착해야 한다. 그러한 표현감각을 기르는데 동물은 아주 적격이었다.

 

80년대 당시 필자는 부부교사였기 때문에 주중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주말에 아내가 종종 인물모델이 되어 주었다. 빨래하는 모습 등 일상이 그 대상이었는데 아들이 엄마 옆에서 즐겁게 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우리가족의 일상적 삶을 보통사람들의 삶과 공유하는 자세로 작업에 임했다.

 

 

 

 

 

    휴일, 90×130, 1987

 

 

 

 

손때 묻어나는 삶과 세월

리어카의 화의(畵意)는 세월이다. 그것을 그리려했다. 주제에 적합한 리어카를 찾기 위해 서울 청량리 수산물시장에 가서 세 개를 샀다. 당시 화실이 없어서 방학 때 빈 교실에서 그렸는데 리어카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학교 아저씨들과 함께 3층까지 가지고 올라와서 세워놓고 작업을 했다.

 

처음 시장에서 일을 하시는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사려고 했더니 어림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어카는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먼저 필자가 세대를 사고 한 달 후에 그분께 다시 팔겠다는 제안을 했다. 다만 되팔 때는 1/3가격으로 팔겠다고 했더니 응해 주었다. 팔수가 없는 물건이었는데 기꺼이 응해주었기 때문에 필자는 부지런히 한 달 동안 작업에 매진했었다.

 

리어카는 생명이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을 끄는 사람의 발길과 동행하면서 흘린 땀방울과 자 욱 마다 사연이 깊다. 폐기되기 전까지 구르며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어난 인생과 오랜 세월의 늙은 리어카를 통해 작품세계를 나타내고 싶었다. 이 작품은 세월연작으로 훗날 소나무작품과 연결이 되었다.

 

 

 

 

 

    B, 135×160, 1982

 

 

 

이 시절 당시 서울의 봉천동은 뒤에는 현대적인 아파트가 들어서고 앞에는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슬레이트 지붕과 연탄굴뚝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새로운 주택문화가 시작되는 아파트와 시간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대가 겹쳐지는 풍경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누구나 늘 그런 교차점에 살고 있는 것이다.

 

화선지는 표면이 매끈해서 시멘트의 거침과 슬레이트의 낡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화선지 밑에 마대(麻袋)를 붙여 그렸다. 마대의 질감이 우러나오면 화선지를 떼서 배접(褙接)했는데 젊은 시절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친 작품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이때가 내가 그림을 그렸던 시절 중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번 돈을 그림에 다 투자해야 했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당연히 가족들의 희생을 컸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와 용기를 준 따뜻한 가족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렵, 필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못할 것 같아서 용단을 내렸다. 서울 인사동에 화실을 낸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퇴근 후엔 화실로 가서 그림을 그리고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열정의 시절이었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1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