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Kim Chung Sik〕 한국화가 김충식②|스케치 여행 (김충식, 김충식 작가, 화가 김충식, 김충식 화백, 이육사,추사 김정희,金忠植, 안동,安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7. 1. 11:41

 

정월, 54×73한지에 수묵담채, 1996

 

 

 

이 무렵 나는 화구(畫具)를 들고 소재를 찾는 여행을 하던 시절 이었다. 전국 각지를 다녔다. 경상도를 비롯해 전라도, 제주도 등 전국을 안가본데가 없이 다녔다.

 

이때는 를 그리려고 했다. 이전 시기가 표현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면 내가 누구이고 어떤 것을 그리려고 하는지 또 무엇을 그리려고 떠나야하는지 등 늘 풍경들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스케치 여행을 했던 것이다.

 

숲은, 여름엔 무성(茂盛)하니 잘 안 보인다. 스케치 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계절이 잎이 떨어진 뒤, 계절이다. 그래서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많이 집중해서 다녔다. 이 계절엔 붓이 쩍쩍 화선지에 달라붙는 가운데에도 한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석유버너에 물을 올려 녹여가면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추위를 견디며 몰입했다.

 

 

 

 

 

    고목이 있는 김씨네 마을의 풍경, 92×52

 

 

 

 

 

세월이 빚은 그루터기

여러 곳을 다니다 경북 안동(安東)을 찾게 되었다. 초겨울 찬바람이 불던 때였다. 시인 이육사(李陸史) 생가(生家)를 지나 강가를 따라 깊숙한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의 이름이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강 언덕엔 절벽이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였으나 필자의 눈엔 한 그루 나무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하루 종일을 그 나무하고만 대화했다. 나무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지어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작품 고목이 있는 김씨네 마을의 풍경은 나무가 솔직히 말해주는 것을 솔직하게 담아 그리려고 노력했던 작품이다.

   

그 나무 앞에서 첫 대면을 했을 때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의 소나무가 떠 올려졌다. 홀로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 이렇게 깊은 주름으로 변하게 될까!

 

안동에는 옛 부터 변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었다. 자연이 만들고 간직한 원래 그대로의 것.’ 벼락을 맞은 것 같기도 하고 겨우겨우 살아 온 듯 상흔(傷痕)이 있었다. 나무는 불필요한 것들을 다 버린, 스스로 훌훌 털어낸 고목 한 그루였다. 자기가 간직할 만한 것만 간직하고 있었다. 진정 의연(毅然)이란 그런 것이었다.

 

필자도 당시 인내하던 시절이었기에 동변상련(同病相憐)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나는 천천히 겸허하게 다가갔고 나무의 비움과 나의 겸허가 빚어낸 솔직한 세월의 흔적을 덥히는 참모습을 그려 낼 수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리고 주름투성이라도 라고 할 수 있는 것. 올곧은 정신사(精神史)를 담고 있는 세월, 바로 그 나무에게서 발견한 진정성이었다.

 

 

 

 

 

    새벽강가의 사색 에서, 140×350

 

 

 

 

 

강가, 새벽의 명상

강가에 있는 조약돌이다. 그저 이름 없는 돌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이 돌들은 서로 다른 행로(行路)를 지나와 그곳에 와서 하나하나 모여 있는 것이다.

 

나는 새벽강가를 천천히 걸으며 돌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렸다. 조약돌에게 보내는 나의 찬사이자 명상을 담은 것이다. 같은 하늘아래서 모여 살면서 내가 미처 손잡아 주지 못한 사람들. 그런 것과의 관계이다. 그 고요한 새벽의 명상은 그렇게 의미를 전한다.

 

 

 

 

   

양짓말 이야기, 97×130, 1994

 

 

 

 

어느 시골마을을 지나갔다. 나지막한 산과 평화로운 강가의 풍경. 나는 그곳이 어느 특정지역이어서가 아니라 그 평화로운 느낌을 화폭에 담았다. ‘양짓말 이야기작품을 그릴 때 작가로서 나의 마음이 대단히 평화로웠었다.

 

강가의 표현이다. 늘 보던 미루나무도 있었고 키가 나지막한 어머니 모습 같은 따뜻한 산이 있었다. 위압적이지 않고 기묘(奇妙)하지도 않고 정말로 단순한 달 항아리 같은 산언덕 모습을 그린 것이다. 눈을 감고 상상하면 늘 떠올려지는 고향풍경 같은 것이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1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