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Kim Chung Sik〕 한국화가 김충식④|겸허한 생의 자세(김충식, 김충식 작가, 화가 김충식, 김충식 화백, 무위자연,설경작가,金忠植, 정자,亭子)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29. 14:01

  

만설의 방도리, 69×137한지에 수묵담채, 2002

 

 

 

어떤 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도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듯이 이때는 그림의 주제를 그리지 않고 남기는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이전에는 주제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었다면, 그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정자(亭子)를 위한 만설, 35×68, 2002

 

 

 

 

그리지 않고 그리는 깊이 

설경을 단편적이나마 설명하자면 이렇다. 소재인 꽃이나 나비 대나무 등은 눈()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실제 그리지 않고 화선지를 그대로 남긴 것이다.

 

여백(餘白)이다. 이것은 실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서 비워놓은 것이자 또 많은 것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이루는 것의 함축적인 표현이 눈이고 그리지 않고 그리는 것의 깊은 이야기를 작업적으로 담은 것이 여백이라 할 수 있다.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던 시절이다.

 

설경을 그리고 난 후부터 내 삶이 달라졌었다. 우선 나의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했고 그랬더니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예를 들어 불편함은 나쁘다거나 힘 드는 것이 좋지 않다라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불편한 것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능률적인 것이 꼭 가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으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그런 것을 작품으로 말한 것이 설경 연작(連作)이다.

 

 

 

 

 

    4월에 부는 바람, 136×169

 

 

 

설경작가로 급부상되다

먹색을 다치지 않게 봄 색을 최대한 자제한 작품으로 풍요로움과 희망을 나타내기 위해 번짐을 활용한 것이다. 혹한(酷寒)을 이겨내고 물이 오르는 시기의 자연을 그린 작품이다. 부드러운 번짐으로 생명이 샘솟는 것을 타나내기 위해 오히려 여백을 처리했다. 밑에 있는 그림을 지우듯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력을 나타낸 것이다.

 

대지에서 생명이 활발하게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계절을 작품으로 표현하기위해 화선지에서 먹이 번져가는 속도가 일어나는 현상을 그대로 담았다. 이것이 대자연의 힘이요, 기운이다.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 새 희망을 담아 드립니다. 45×69

 

 

 

이 시기가 보이는 외의 것을 보려고 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나타내려고 했는데 작가로서 내 삶의 철학을 정립해가는 시기이다. 내 생각을 나타내는 시기였다. 이 당시의 설경은 관람자들의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설경 작가로서 주목을 받고 설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1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