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문형태|정당성을 부여한 열정!-‘메시지’연작(문형태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10. 23:46

 

 

spaghetti, 72.7x64oil on canvas, 2012

 

  

 

아이가 보채는 듯 보이지만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들어 글썽이며 엄마, 나 마음 다쳤어!’ 라는 일러바침, 울분의 호소를 달래본 적이 있는가. 자장가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누구나 혼자이듯 아무도 내일은 모른다. 좁고 긴 연습실에서 마지막 리허설이 끝났다. 폭이 좁은 단색 적()핑크 넥타이는 하얀 드레스와 어울려 날렵하면서도 세련돼보였다. 조율 끝난 흑백 건반은 반들반들 미끄러지듯 윤기가 흘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움직임들을 가라앉게 하는 무언의 명령 같았다. 피아노 맨(man)이 공중으로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건반으로 내렸다. 그때 웅성거리던 관객들은 일제히 손끝을 직시했으나, 건반 앞에서 멈췄다. 단 한 번, 이 짧은 춤동작 같은 몸놀림은 그러나 객석을 더 깊은 고요의 공간으로 몰았다.

 

 

 

   

think about you, 45.5×33.4oil on canvas, 2012

 

 

 

표정이 조금씩 천천히 클로즈업됐다. 찌푸린 듯 일그러진 입가, , 이마는 온통 고통을 겨우 참아내고 있는 듯 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음악회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의문이 고개를 드는 순간 쾅쾅! 강렬한 음이 불안의 그늘을 뒤흔들었고 모든 음역 대를 자유자재로 순식간에 넘나드는 손놀림을 따라 천둥, 폭풍우가 몰아쳤다. 뜻밖이었다. 연주가 흐를수록 하나 둘 주술에 취한 듯 이완(弛緩)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들리는가, 내면 그 내부의 외침이

단지 이 말만은 꼭 묻고 싶었죠. , 나를 떠났니?” 석류석(garnet) 귀걸이를 한 귀부인은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이층자리서 가슴에 두 손을 모으며 결국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연민 그 아픈 회환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출입문 코너에 앉은 희끗한 중년신사는 나는 참 뜻을 보여주었지만 유린(蹂躪) 당했다며 자존심 상해했다. 잠시 후 조금 누그러졌지만 조각난 마음의 슬픔을 꿰맞추느라 겨울 밤거리를 서성거려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해 왔다.

 

 

 

   

piano man, 72.7x64oil on canvas, 2012

 

 

 

연두색 감수성이 풋풋하게 묻어나는 말쑥한 청년은 이 독백을 우연찮게 목격했다. 해 저물면 돌아갈 곳 막막했던 어느 해 궁핍의 유년시절, 텅 빈 골목길의 배회가 불현듯 그를 자극했다.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내겐 가장 커다란 은총이라고 휘갈겼던 일기의 한 구절을 떠올리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객석은 완전히 풀어졌다. 이 순간의 전율을 깨뜨리지 않으려 피아노 맨은 필사적으로 건반에 모든 걸 걸고 있었다. 마지막 악보를 넘기는 순간 오렌지색 나비넥타이로 정장을 한 아이가 그의 피아노 연주는 올바르다며 짝짝짝 박수를 보냈다. 리듬은 감춤, 경고, 내면과 거기에 가둬 놓은 허황된 계획들 위로 지나갔다. 열정은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 앞에 다른 것은 설수 없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 연주회 제목은 분명 메시지(Message)였을 것이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21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