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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작가 노현탁ㅣ그 짧은 망각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찰나(노현탁 작가, 화가 노현탁)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11. 11:53

 

room, 117× 91acrylic on canvas, 2010

 

 

 

멀티미디어 작가 노현탁의 거대한 힘 그리고 공포두리번거리네. 무엇을, 대체 어떡하다 잃어버렸는지. 샘 보다 맑고 깊은 마음 속 수줍은, 本能. 행복은 그대 자상한 도덕적 정신이 빚어내는 기쁨. 이젠 맛보시라!

 

길은 순례처럼 꼬불꼬불하다. ()도 소리도 없는 신성한 성역에 감도는 기운같은 어떤 예감. 시계처럼 한 방향으로 맴도는 물의 구심력. 가속으로 부대끼며 생겨난 허연 물살이 점점 중심으로 모여들면 미친 듯이 파고는 높아져 갔다. 언덕위에서 바라보던 비취빛 물결은 최고의 명물로 눈길을 끌었던 탓 때문이었을까.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부림치는 거대한 흰 수염고래의 등장이라고 사람들은 더 몰려들었다. 깨끗하고도 풍성한 햇살이 안온하게 드리우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끓어오르는 욕망같은 현란한 바다의 마법. 그 짧은 망각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찰나, 불과 몇 발자국 앞에서 뻣뻣하게 선 채로 물기둥이 달려들 때 재앙을 직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scene, 96× 227oil on canvas, 2011

 

 

 

 

사람들은, 위용과 징후라는 단어를 들이대며 규모의 정보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전문성을 강조했지만 불행히도 그 심원(深源)하고도 사나운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날 저녁 허공을 흐르는 구름과 출렁이는 바다는 온통 선연한 진홍색 핏빛이 몰려들어 인적없는 만()을 오래도록 드리웠다.

 

아무것도 남김없는 완전한 소멸. 큰 키의 등대가 노을빛 속으로 들어가 냐고 울부짖으며 대들었지만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물기로 축축한 절벽 바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의 경쾌한 낙하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때 주검과 생성의 징표처럼 푸른 이끼가 걷힌 웅덩이에 일렁이는 화석(化石).

 

 

소멸이란 숙명에 알몸이 된 인간

오오, 허물어지는 것의 질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숙명(宿命)!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소멸한 뒤 참으로 개울물이 될 수 있고 조약돌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래와 바람과 하늘 속에서 알몸이 된 채 입술을 깨물었어라.”<이세방 , 모래성>

 

그는 난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도시를 내려다본다. 꾹 다문 입술, 두 손을 꽉 쥐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 그의 안전을 보장하는 건 최소화된 움직임뿐이다. 애써 무표정한 얼굴엔 저항하듯 예민한 언어들이 살아있다. 대개 이런 경우의 덕담이란 이를테면 잘 듣는 것이 훌륭한 답변이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아래의 깊이를 알아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랑의 조건은 동등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여인이 풋풋한 향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기적, 어떤 사건의 중요한 단서? 아니면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돼 있다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버거운 일상의 권태?<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행복의 정복’, 이순희 역>

 

 

 

 

 

노현탁 작가

 

 

 

 

출처=-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413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