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LEE HYE KYOUNG〕 화가 이혜경| ‘我와 興’-그대 꾸밈없는 웃음(한국화 이혜경 작가, 한국화가 이혜경)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10. 00:54

 

-꿈꾸는 여행, 60.6×72.7장지에 혼합재료, 2010

 

  

 

산다는 것, 들어내고 버려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도 많은가. 쇄신(刷新). 그것은 허락이다. 스스로 묵은 폐단을 털어내지 않으면 미지의 문()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맨몸. 물속을 유영하듯 새록새록 아기잠에 빠져든 꽃나무 숲속을 거닐다니. 바람이 안개 사이를 휘저으면 천년의 시간이 알몸으로 깨어났다.

 

환한 미소, 그대 몸짓만으로도 뛰는 가슴. 당신 얼굴 다가오면 온통 전율로 숨이 벅차올랐다. 그러므로 서성이지 않으리. 두텁고 무거운 장벽 걷어내어 내 천년의 사랑을 보듬을 터, 약속하리라 정갈한 눈길로 흐르는 시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출렁이는 물결,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어둡고 칙칙한 낡은 빗장을 풀어헤치고 밝은 햇살과 푸른 잎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채워 행복한 꽃들의 꽃말들을 하나하나씩 부르며 살자꾸나.

 

이 한 몸, 이 한 마음 호수에 비춰진 연분홍 꽃처럼 춘화(春花) 수놓은 보드랍고 가벼운 비단옷 입고 날개 휘저으며 날고 싶어요. 새들은 떼지어 길 열고 저어기 오시는 그대의 품에 살포시 안기어 꿈결 같은 일생을 살고지고. 활등 같이 부푼 꽃봉오리 어디 그것만이 커질까요. 터질 것 같은 수줍음, 에헤라 좋을시고!

 

벗이여. 우리들 천진스러웠던 시절 함박웃음 기쁨 한마당 기억하시는가. 울긋불긋 형형색색 꽃동산엔 신비스러운 향기 가득했었지. 싱그러운 바람결에 풍년을 기원하는 어른들의 흥겨운 잔치는 우리들에게도 먹을 것 많았던 멋진 날이었어. 나는 가끔 그때의 저녁 무렵, 산등성이에서 들려오던 대금 선율을 잊지 못하네.

 

목 쉰 거친 휘파람처럼 구슬픈 선율 바람에 날리면 왠지 내 마음 여울지고 어스름 저녁 장삼, 고깔 걸치고 추는 승무(僧舞)에 흠씬 빨려 들어갔었지. 빼어난 춤꾼의 그 앳된 걸음걸음이 어느새 북채를 들면 둥둥 법고(法鼓) 소리가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웠었어. 느리다 점점 빠른 강약 리듬이 절정에 다다를 땐 어느덧 달이 떠오르곤 했었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는 어머니 젖은 눈가의 간절함은 내 가슴에서 떠날 수 없는 영혼의 추억으로 간직돼 있지.

 

이제는 산꼭대기가 보이는 숲길을 더 힘차게 올라야 하네. 찰랑찰랑 경쾌한 리듬의 물결이 퍼지듯 날개를 접고 가속을 붙여 협곡을 날아가다 창공을 박차 오르는 힘찬 독수리 날개 짓처럼 맑고 선명한 기운으로 나아가야겠네. 아는가, 그 시절 맨살로 인정스럽게 보듬어 주던 그대 꾸밈없는 웃음이 얼마나 참 나를 깨우쳐주는 힘이 되어줬는지를.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21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