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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권의철|웅혼한 정신 준엄한 기록-① (권의철 화백,권의철 작가,History연작, KWON EUI CHUL,상산(尙山) 권의철(權義鐵),한국화 비구상)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11. 18:37

    

History-1109, 100×80.3Mixed media, 2011

 

  

이른 아침 새들이 한바탕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미하며 합창이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 나뭇잎 사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따끈하게 덥힌 찾잔 속에 실타래처럼 천천히 열리는 벚꽃의, ().

 

그윽한 향기 속으로 시간의 결을 풀어놓으며 생의 멍울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담벼락아래 꽤 오래된 산딸나무 하얀 꽃이 떨어져 소복하게 쌓여 차라리 처연해보였는데.

 

차마 모두 쓸어내지 못하고 듬성듬성 몇 잎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흙 담을 넘어 그리운 이를 찾아 한걸음 달려온 듯 대금(大芩) 산조가락이 그저 수줍기만 한 채 피어난 꽃잎을 흔들었다.

 

 

    

History-1212, 91.0×72.7, 2012

 

 

엄중한 가르침 무명 꽃노래

 

날카로운 기암절벽의 강변엔 벚꽃나무행렬이 둑을 따라 줄지어 서서 장관이었다. 가지를 떠나며 이름을 버린 꽃잎은 미망(迷妄)을 벗어나 평안히 흘러갔다. 산들바람에 나풀거리듯 파란 물결 위를 출렁이며 반짝이다 이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데.

 

그렇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숙연한 그 황홀한 광경을 사람들은 무명 꽃노래라 말했다. 아련한 정담을 나눈 입술의 온기처럼 그 순간의 교감은 깊었다. 왠지 잡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을 울컥 쥐어흔들었다.

 

 

 

 

    History-1414, 52.5×52.5Mixed media, 2014

   

 

풍상을 이겨 낸 파르스름한 암벽이끼엔 세월흔적이 얼룩처럼 스며있었다. 다감하게도 나뭇잎 하나가 가는 목소리로 잊혀져간 어느 비망록을 낭랑하게 읽어나갔다. 기꺼이 내어놓아 전승된 웅혼한 정신의 글들은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품위와 맑은 심성을 헤아리게 하는 준엄한 지혜의 기록들로 가득했다.

 

 

 

    

History-1420, 52.5×52.5, 2014

 

 

그리고 깎아지른 거친 절벽엔 천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풍화 속에서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장으로 남아있었다. “萬物方作(만물방작), 居以須復也(거이수복야). 만물은 두루 생육되지만, 모두 반드시 제자리인 근원으로 되돌아간다.”<초간본 노자로 보는 무위자연의 삶, 송인행 역저, 문화의 힘>

 

 

 

 출처=이코노믹리뷰 2015511, -권동철(원문출처=경제월간 인사이트 코리아 2015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