擴張과 還元의 力學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부터 우리 일상생활의 연장선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또는 가장 근원적이며 직접적인 체험(體驗)으로부터 관념(觀念)의 응고물(凝固物)로서의 물체(物體)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미술(美術)은 일찍이 없었던 극한(極限)적인 진폭(振幅)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미술(美術) 행위는 미술(美術) 그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으로써 온갖 허식(虛飾)을 내던진다. 가장 원초(原初)적인 상태의 예술(藝術)의 의미는 그것이 ‘예술(藝術)’이기 이전(以前)에 무엇보다도 생(生)의 확인(確認)이라는 데에 있었다. 오늘날 미술(美術)은 그 원초(原初)의 의미를 지향한다.
한 가닥의 선(線)은 이를테면 우주(宇宙)를 잇는 고압선(高壓線)처럼 무한한 잠재력(潛在力)으로 충전(充電)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意識)속에 강렬한 긴장(緊張)을 낳는다. 또 이름 없는 오브제는 바로 그 무명성(無名性) 까닭에 생생한 실존(實存)을 향해 열려져 있고 우리를 새로운 인식(認識)의 모험(冒險)에로 안내한다.
아니 세계(世界)는 바로 무명(無名)이며 그 무명(無名) 속에서 우리는 체험하며 행위하며 인식한다. 그리고 그 흔적이 바로 우리의 ‘작품(作品)’인 것이다.
‘무명(無名)의 표기(表記)’로서의 예술(藝術)은 그대로 알몸의 예술(藝術이다. 예술(藝術)은 가장 근원적인 자신(自身)으로 환원(還元)하며 동시에 예술(藝術)이 예술(藝術)이기 이전의 생(生)의 상태로 확장(擴張)해 간다. 이 확장(擴張)과 환원(還元)의 사이…그 사이에 있는 것은 그 어떤 역사(歷史)도 아니요 변증법(辯證法)도 아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전일(全一)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실존(實存)의 역학(力學)이다. 왜냐하면 참다운 창조(創造)는 곧 이 실존(實存)의 각성(覺醒)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예술(美術)은 가장 근원적이며 단일(單一)적인 상태(狀態)로 수렴하면서 동시에 과학 문명의 복잡다기한 세포(細胞)속에 침투하며, 또는 생경(生硬)한 물질(物質)로 치환(置換)되며, 또는 순수한 관념(觀念)속에서 무상(無償)의 행위로 확장(擴張)된다.
이제 예술(藝術)은 이미 예술(藝術)이기를 그친 것일까?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 어떤 의미에서 건 ‘반(反)=예술(藝術)’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술(藝術)의 이름 아래서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課題), 그것은 바로 이 영점(零點)에 돌아 온 예술(藝術)에게 새로운 생명(生命)의 의미(意味)를 부과하는 데 있는 것이다. <1970. 5. 김인환(金仁煥)·오광수(吳光洙)·이일(李逸)/1970년 AG전시 선언문(宣言文)/1970, 한국아방가르드협회지 No3 수록>
△권동철, 12월24 2021,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