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⑯‥안수길(安壽吉),<불타는 여울>,(노경식(盧炅植), 각색극 <북간도>,<광야>(김기팔 작), <손탁호텔>(차범석)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1. 25. 14:36

국립극장 제81회 공연 (파우스트) 포스터(괴테 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깊은 성찰

 

 

이해랑은 19792, 격동의 1970년대를 마감하는 연출을 국립극장에서 했는데, 거기서 그는 본격 리얼리즘 연출을 선언한 바 있다. 즉 그가 신진 작가가 쓴 쇼비니즘적인 희곡 <객사>(안종관 각색)를 연출하면서 우리나라 연극계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온 해보고 싶다는 의도에서 이 연극의 연출 방향을 잡았다. 연극을 향한 앞으로 남은 나의 여력을 이 방향에 쏟아보고 싶기 때문에 <객사>도 그런 성격을 지닌 사실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연출 노트에서도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소설 객사는 우리가 한동안 까맣게 잊었던 한민족의 뼈아픈 수난이 어떤 특이한 가정을 통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문화란 과거와 미래라는 양면 거울 속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과거를 되씹음으로써 착실한 미래를 내다보며 전진해 갈 수 있다. 현실의 사건이 예술로써 형상화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 지며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는 과거 속에서 참다운 진리가 찾아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60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침묵을 깨고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나는 객사를 단순한 민족의 수난사로만 취급하고 싶지 않다. 어려운 상황과 처지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강인성과 그러한 강인성에 깔린 숭고한 정신과 사상을 강조해보고 싶다.”

 

그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역사에 대한 성찰을 깊이 했다. 그의 작품 목록에 역사극들이 대체로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안수길(安壽吉)의 소설 각색극 <북간도>를 비롯해서 <광야>(김기팔 작), <손탁호텔>(차범석 작), <객사>(안종관 각색), <산수유> 등이 바로 그런 계열의 작품들이다.

 


이해랑의 역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한 장면


신에의 귀의

이해랑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쓴 것은 1984년 봄 국립극단 공연의 <불타는 여울>(노경식(盧炅植) )에서다. 그는 만년에 접어들면서 지난 세월을 자주 회상했고 노년의 삶을 반추하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다. 가령 그가 <불타는 여울>의 연출 노트에 쓴 다음과 같은 글은 과거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님이 말하신 이순(耳順)60고개를 넘고 칠순의 문턱에 섰다. 일제의 억압과 태평양 전쟁의 암흑기를 거치고 해방의 기쁨을 맞았고 민족분단과 좌우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혼란을 몸소 치러야 했으며, 또한 동족살상의 전쟁 비극과 참화를 뼈아프게 겪어야만 했다.

 

이렇듯 암흑과 격동과 혼란에 부대끼고 때로는 연극예술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沒理解)와 냉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내 사상적 이념과 예술적 신념을 간직한 채 내가 젊은 나이에 처음 택한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여지껏 살아온 셈이니, 머리 숙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과 동료 후학들에게 따뜻한 정()을 보내며, 내 나름대로의 한 세상을 자랑과 보람과 긍지로 알고 느끼는 터이다.

 

힘들고 어려움이 외적으로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예술의 성숙이나 성취가 한 생명체(生命体)의 탄생처럼 창조행위라고 불려 질 때, 그처럼 어렵고 힘들고 지난(至難)한 일이 또 있겠는가.”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과거 연출 노트에서 주로 작품 분석이나 연출방향에 대해 썼던 것과는 판이한 글을 썼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내면 깊숙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에 찬 깊은 성찰이며 신에의 귀의라 하겠다


[정리:권동철]/주간한국 2019년 1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