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주간한국]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18)‥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제1회 전국연극인대회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2. 10. 02:27

한국일보 연극영화TV예술상을 마치고


내재된 의미 캐기 

 

이해랑은 연출가로 변신한 뒤 그는 배우들에게 대단히 관대했다. 연습 도중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배우에게 인격적 대우를 해준 극히 드문 연출가였다. 그는 연극을 창조하는 일의 삼각점에 서 있는 작가, 연출가, 배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극작가는 배우에게 자기가 써놓은 작품의 인물을 충실하게 그대로 무대에 현실화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연출가는 자기의 지시에 따라 배우가 괴뢰와 같이 움직이며 행동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극작가가 작품을 쓸 때 머리에 그리던 인물의 이미지와 실인 존재인 배우가 무대 위에 표현하여 놓은 인물과는 언제나 현격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극작가에게는 그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배우에게는 희곡의 대사에 따라서 감정의 체조(體操)만을 시키고 자신이 직접 무대에 나와서 희곡을 낭독하는 성급한 극작가도 생긴 일이 있다. 그리고 또 연출가는 연극 전체에 동요와 혼란을 가져오고 자기의 연출(演出)의 자유스러운 창조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사품에서 배우가 설 땅은 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배우가 그의 창조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면서 그가 전제하는 것은 극작가와 연출가 또는 조명, 무대미술 등과 같은 것이 생겨나기 전에도 연극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극작가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과 연출가의 끊임없는 압력의 틈바구니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배우지만 연극의 본질적인 존재로서 배우의 위상에는 시공을 초월해서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1회 전국연극인대회에 참가한 이해랑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이해랑의 연기관은 절대적으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 의존케 된 것은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1930년대였으므로 대학수업 또는 쓰키지 소극장에서 자연스럽게 스타니슬랍스키를 배웠던 데 따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거기다가 안톤 체호프의 신연극관을 접목시킨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본질은 역시 밀도 있는 훈련과 완벽을 향한 부단한 노력에 있다. 그러니까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헌신적이며 꾸준한 노력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고 보았다. 가령 8개 항으로 요약될 수 있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요체 중 첫 번째만 보더라도 배우의 신체와 음성은 모든 요구에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훈련되고 신축적이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두 번째가 배우는 실감나는 행동, 비즈니스 및 대사를 통해서 그의 역을 진실 되게 구축할 수 있도록 리얼리티를 관찰하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스타니슬랍스키는 첫째부터 끝까지 배우의 철저한 훈련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요체는 이해랑의 부친이 아들에게 좌우명으로 가르쳐준 설익은 주먹은 내밀지 말라. 항상 단단한 주먹을 내놔라와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항상 후배나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연기의 요체가 바로 철두철미한 훈련에 따른 앙상블과 작품 완성도다. 그는 연기의 매력이라는 것은 극중 인물의 정서 속에 젖어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연기의 중요성은 어디까지나 대사 밑에 흐르고 있는 사상과 정서 속에서 나불나불 표피적(表皮的)으로 흘러서는 안 되고 그 진실을 찾는 것이라 했다. 이는 스타니슬랍스키가 항상 강조해온 소위 내재된 의미 캐기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리:권동철]/주간한국 2019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