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19)‥연출가는 정신적인 배우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2. 14. 20:13

예술원 회원들과 함께 한 이해랑



이해랑은 한국 근대 연극사에서 매우 유니크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홍해성과 유치진으로부터 연출의 기초를 배우고 그들에 이어 세 번째 전문연출로 자리매김했지만 나름대로의 확고한 연출관을 수립하고 실천했던 점 때문이다. 오로지 스타니슬랍스키 연출론에 바탕을 두고 거기에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가미한 정도로 자신만의 연출관을 세우고 끝까지 실천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그는 일생의 업이었던 연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어느 일간지에 쓴 글 연극 10에서 연출에 대하여 배우가 분장을 하고 무대에서 각광을 받아야만 희곡의 인간은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또 우리와 같이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매력을 희곡에다 부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위 연출이다. 연출가는 정신적인 배우인 동시에 연극을 통일하는 존재라 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구절은 연출가가 정신적인 배우라고 한 부분이다. 이는 대단히 정곡을 찌른 지적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출가나 배우가 희곡의 해석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연출가는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자신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출은 어디까지나 희곡과 공연의 중간에 위치한다.

 

희곡을 극장구조에 맞도록 수정

이해랑은 대체로 온건한 자세의 연출가 입장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비평적 연출을 탐탁지 않게 보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지도자적 연출을 선호한 것이다. 즉 그는 배우의 잠재력과 필링(feeling)을 끄집어내는 연출을 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노련한 노덕 교사와 같은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가 잠재력과 느낌으로 본 배우의 연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연출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기는 일상적인 인간행동의 연장이라 한 것과 상통한다. 바꾸어 말하면 좋은 연기는 곧 실생활 행동의 믿을 만한 모방이라고 말한 것과 상통한다. 배우의 대사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무대 위에 인생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연극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연출을 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작가가 내놓은 희곡을 극장구조에 맞도록 수정해서 무대 위에 올리는 연출가에 속한다. 이는 그에게 연출을 가르친(?) 선배 유치진과 다른 점이다. 이처럼 그가 원작 희곡에 손을 대는 연출가가 된 데는 그의 개성과 관객의식, 그리고 수준 낮은 창작극의 양산 등에 기인한다. 그는 몇 가지 글에서 자신이 창작극에 손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로서 무대를 모르고 문학적으로 희곡을 쓰는 신인들이 많았던 것을 개탄 한 적이 있다.

 

권동철=2019214일 데일리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