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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포토그래퍼 백지현|청록의 물속, 난마(亂麻) 세상을 쓰다듬다…‘여행자의 풍경’ 연작 (사진작가 백지현, 백지현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2. 23:11

 

여행자의 풍경, 30×60Digital C-print, 2010.

 

  

 

호수와 산과 맑디맑은 햇빛이 빚은 블루(Blue)의 장엄한 자연 앞에 서면 청량한 바람 한줄기 가슴으로 불어오는 듯 생생하다. 마음을 깨끗이 닦아내어 주기 때문이다.

 

 

해발 4718m 고산, 하늘과 가장 가까운 티베트 남쵸 호수. 늙은 야크(yak)의 등짝처럼 밋밋한 뼈대를 드러낸 산맥을 가파르게 구불구불 돌아 내려온 만년(萬年)의 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눈을 씻으면 곧 해맑은 눈동자가 될 듯, 호수의 눈부신 블루 사파이어(Blue Sapphire) 물빛은 그러나 미동도 없다.

 

가는 건지 오는 것인지 성호(聖湖)의 순례자도 말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 물이 입적(入寂)을 하셨나! 산마루엔 유유히 풀을 뜯는 양떼 같은 구름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순순한 구름 그림자는 산악과 초원과 호수를 선명히 떠올려 절묘하게 깨달음의 경계로 이끌었다. 맨 살갗으로 눈과 비를 맞은 첩첩 병풍 봉우리.

 

 

 

   

    여행자의 풍경, 40×60Digital C-print, 2010.

 

 

 

키 작은 관목은 바람의 향방과 시간의 깊이와 새들의 이동을 그림자의 언어로 의미 있게 구별해주었다. 온화한 햇살의 곡조(曲調)는 그림자가 그림자를 만드는 난마(亂麻)같이 어지러운 세상을 쓰다듬는다. 그때, 청록의 물속에 투영된 헤아릴 수 없는 숭엄(崇嚴)한 신비로운 빛이 열리는 것이었다.

 

물은 겸허를 완성하는 문인가. 연두색 물줄기는 그윽하게 호수에 잠겨들었다. 물은 산 너머 타오르는 황혼을 은근히 품고 쉬지 않고 흐르는데 흘러왔는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를 구()하지 못한 갈증이 더해만 갈 즈음.

 

 

 

   

    여행자의 풍경, 40×60Digital C-print, 2010.

 

 

 

호수에 한 무리 갈매기가 평화롭게 날아간다. 그때 일어나는 한줄기 바람, 일제히 찰랑이는 물의 춤. 수면에 비친 우아한 제 날개 짓으로 빙빙 원()을 그리다 빙긋 미묘히 웃으며 순례의 사내에 한마디 속삭이곤 사라졌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한사코 큰 집을 지으려하나/뱁새는 오직 한가지만을 써서 집을 짓되/자기 한 몸이 새끼들을 품을 수 있으면 족한 것을” <한승원 소설, 초의(草衣)>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지평선. 초지에 몇, 바람의 말()들이 경쾌하게 달려와 스러져가는 육신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신의 전령사인가. 오체투지(五體投地). “관조하라! 그대의 마음을 관조하고 또 관조하라! 우주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녀도 마음을 찾을 수 없으리라. 우주란 마음이 만들어 낸 것.”<티베트 사자(死者)의 서()>

 

밤이 되면 저 푸르른 호수에 어스름 달빛 찾아오겠지. 음습했던 마음 깨친 진리. 변한다는 것, 그것이 곧 무상(無常)이거늘. 오오, 마음 짐 녹은 자리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연꽃이여!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1024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