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한국화 김충식|晩秋,황홀하게 넘실대는 코스모스 춤(한국화가 김충식, 김충식 작가, 김충식 화백, KIM CHUNG SIK,金忠植)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2. 10:44

 

  기다림을 위한 날, 70×34한지에 수묵담채, 2004.

 

 

 

허와 무. 안개 속처럼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 여백(餘白) 정신이여. 붓을 타고 화선지에 코스모스 스몄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는 본래의 그것. 인간 마음 표현이 우주 아니던가.

 

시월의 강변엔 가슴으로 다시 헤아려 보는 들꽃 무리들이 펼쳐 있었다. 그들은 어찌해 피어날 수 있었을까. 친절하게도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 왔다. ‘지난 여름은 너무 지루했었어. 강바람이 큰 위로가 되었지.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것들을 옆에 두고 사는 건 큰 행복이야.’

 

섬세하고 미세한 시간의 움직임은 어느새 얕은 구릉에도 어김이 없었다. 찰랑찰랑 물결이 뭍으로 옮겨온 잔모래들에 높고 투명한 하늘이 없었다면 생명이 꽃피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철망에 걸린 녹슨 햇빛보다 오래, 오래 버티던 가랑잎이 굴러 떨어진다. 가을, 따돌려지는 듯한 편안함.”<황인숙 , 가을>

 

정오의 햇빛은 뜻밖에 고요와 어울렸다. 잠시의 휴식은 풍만한 과일처럼 달콤했다. 이제 곧 쉼 없이 하늘거리는 군무(群舞)의 향연이 대지에 수놓아질 것이다. 사방(四方)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쓰러질 듯 드러눕더라도 아름답고 황홀하게 넘실대는 춤은 뜨겁다. 용서란 이런 것인가!

 

 

 

 

   

    아름다운 가을에 부르는 노래, 365×144한지에 수묵담채, 2005.

 

 

 

가늘고 기다란, 위태롭게만 보이는 꽃대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자리 찾기에 분주하다. 부지런히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거릴 때마다 형형색색 오팔(opal) 보석같이 눈동자며 머리통은 빛났다. 누구는 아무도 몰래 흘린 한 방울 눈물 같다고도 했지만, 한 번의 날갯짓과 초침(秒針) 시간을 맞바꾸며 청춘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역설(逆說)의 문장 위에 어른거린다. 네 그림자인가 아니면 가을의 만끽인가.

 

해질 무렵. 강물은 더욱 푸르고 차가워졌다. 보드라운 모래언덕 발 아래 전해오는 딱딱한 느낌. 입술 닿는 자리, 정성스럽게 ()’을 새겨놓은 목각피리 하나였다. 만추(晩秋)에 실려 온 간절한 선율. “풀어라 강물에 긴 머리카락처럼/뜨거운 살갗에 감겨오는 추운 물살/껴안고 흘러라 물줄기는 달라도.”<박라연 , 코스모스의 노래>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말이 절절히 뼈 속을 파고드는 저문 황혼의 둑길. , 돌아보면 젊은 날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시월 스무날을 위한 사랑, 67.5×70한지에 수묵담채, 2004.    

  

 

 

푸르른 추월(秋月)따라 문풍지 위로 순백 코스모스가 한창인 시각. 사내는, 왕자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물의 요정 루살카(Rusalka)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마녀의 도움으로 인간으로 변신했지만 그 대가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그녀. ‘너무 가혹한 운명이라며 여자는 울먹였다. “하늘 속 높이 솟은 달님, 말해주세요. 내 사랑은 어디 있는지.”<드보르작(Dvorak), 달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 인간과의 덧없는 사랑. 남자가 애수에 잠긴 듯 노래를 부를 때 살며시 팔을 껴안았다. “,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92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