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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 INHEH〕한국화가 황인혜|앞날의 희망 상징한 활기찬 가정 (한국화 황인혜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4. 3. 19:50

 

갑돌이, 72.5×61캔버스위에 혼합재료, 2014

 

 

 

복사꽃 만발한 나무그늘아래 바구니를 들고 봄나물 캐는 갑순이를 먼발치서 본 것뿐인데. 순수하고 강직한 갑돌이. 일생 단 한 번 꽃피운다는 대숲에 드러누워 바라 본 높기만 한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도도히 지나가누나. 괜스레 복숭아만한 눈물이 핑 도는데 꽃잎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청춘노래 읊조리며 먼 산만 바라보네. 여보시게. 댓잎이 꽃샘바람에 하늘거리기까지 폭풍한설 혼절하듯 칼바람에 어디 한두 번 펄럭거렸겠는가!

 

 

훈훈한 기운의 가족애

다감(多感)한 행복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는 자식을 어떤 보물 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서로 사랑하는 단란한 모습의 한 가족이다. 아빠의 넓은 어깨가 화면 앞에 둥그스름 그려짐으로써 포용과 믿음과 힘을 강조하고 자상한 유머도 스며있다.

 

그 뒤, 자녀 둘을 부모가 앞뒤 감싸듯 보호하는 구도는 아이들의 평안한 일상의 단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빨강색 배경은 따뜻하고 정열적이며 사랑을 전한다. 초록은 마음의 평안함, 파랑은 앞날의 희망을 상징하여 한 가정의 활기차고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여기에 캔버스 위 장지를 붙이고 그 위 목탄과 돌가루와 혼합된 채색이 융합된 화면은 서로의 재료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목탄의 부드러운 선과 한지에 스며든 색감깊이는 가족이라는 유기적통일체의 안락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갑순이, 72.5×61캔버스위에 혼합재료, 2014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가족애를 실감하고 더욱 돈독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붓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해마다 설빔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이 염색한 옷감으로 지어주셨고 비단에 수놓아진 골무와 두개의 하트가 겹친 모양의 바늘꽂이 모양은 너무나 예뻤었다. 그 색채가 나의 그림에 배어있다라고 말했다.

    

화가는 1971년 대구 공화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80년대 중반 시공(視空)’연작을 통해 자연의 온화한 인상과 긴장감을 주는 색채대비로 반추상 작업을 펼쳤다. 1993년 자음과 모음의 이미지를 묘사한 한글문자추상작업 가나다라연작으로 주목받는데 이듬해 독일 베를린기술박물관 문자의 역사전에 초대받아 참가하게 된다. 이 작품세계는 단순화시킬수록 일반추상과 다를 바 없고 구상(具象)의 인물을 그리기도 한다. 90년대 후반엔 한지를 꼬아 만든 매듭단추가 화면에 등장한다. 작가는 이를 두고 소녀시절 어머니가 가르쳐준 매듭은 오브제(objet) 이상의 모성애를 만나는 가교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 유한한 인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그지없는 사랑(The Endless Love)’의 세계를 화폭에 펼쳐오고 있다. 앞선 한글문자추상이나 구상작품 모두 이 큰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The endless love, 72.5×61캔버스위에 혼합재료, 2014

    

 

 

최근작에서 산업화와 현대화라는 미명아래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고향과 이웃 그리고 지나치게 값어치의 전형에만 눈길 쏠리는 세태에 가족과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해 드러내 주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 소재로 훈훈한 기운을 품은 작품들은 우리가족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나 감명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엔 희수(稀壽)의 연륜에서 작가가 건네는 삶의 잠언(箴言)이 올곧게 스며있다.

 

 

 

=권동철, 에너지경제 201521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