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KWEAK YOUN JOO〕서양화가 곽연주|인연과 섭리 그 가슴에 묻어 몸부림치는 날개 짓, 나비여! (서양화 곽연주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4. 2. 01:24

 

Delight-설레여라, 91×73acrylic on canvas, 2015

 

 

 

우리는 늘 서로에게 아름답다며 헌사(獻辭)한다. 향기를 뿜어내는 이 꽃 저 꽃의 일상을 나는 분주히 전한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영혼을 깊게 이해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느 날 무상하게도 꽃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그곳이 내 마지막자리라는 사실을. 어느 봄날 그 산등성이에 고혹의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새싹이 돋아났을 것이다.

    

 

 

희망과 행복의 전령사

오래된 기록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나풀거림,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동일한 공간의 화면은 존재들을 일체의 교감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훈민정음을 작가는 비뚤비뚤 직접 써 내려갔다. 그 위를 15회 이상 덧칠을 함으로써 켜켜이 쌓인 세월의 깊이감이 묻어나는 아련함과 몽환적 분위기를 우려냈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나비를 얹음으로써 중첩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화면 곳곳에 흩날리는 스텐실(stencil)기법으로 표현한 꽃잎은 부유하는 생()의 발자취처럼 자아에 말을 걸어온다. 그는 이를 큰 기쁨(Delight)’으로 이끌어가고 있지만 우주의 일부 혹은 그것의 총체로서의 생생한 숨소리가 아늑하게 서려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나비는 미묘한 색채와 숲속의 온갖 감미로운 향기를 퍼 나르는 듯 생동감으로 넘친다. 사실적 재현도 추상도 아닌 마음의 색채언어라고 강조하는데 실상 몇 시간을 몰입해야 겨우 작가만의 독창적 나비 한 마리가 탄생하는 수고로움이 배어있다.

 

 

 

   

Delight-외출 꿈꾸네, 145×60acrylic on canvas, 2015

 

 

 

그는 2006년 경향갤러리에서 순수한 나비와 비구상적 꽃을 주제로 한 기쁨환희연작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10년 유나이티드갤러리 전시서 나비로만 화면을 구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시기는 작가에게 중요한 작업의 변화시점으로 생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날고자 하는 욕망을 여백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들로 호평 받았다.

 

이후 2012년도 작업에선 다시 꽃이 등장한다. 자생력 강한 화려한 야생화의 향연과 골프장이미지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2013년 초까지 이어진다. 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자유여행연작에 이어 2014년 하반기, 크리스마스와 겨울 꽃 그리고 여행이라는 의미가 함축된 ‘Delight’시리즈를 발표한다. 팝 요소가 포함된 싱그러운 청춘이미지를 한껏 펼침으로써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Delight-인연, 91×73acrylic on canvas, 2015

 

 

 

비움 그 여백의 질문

자유로운 마음의 지평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설렘과 달콤함에 젖어 있다. 수회에 걸친 채색 끝에 나오는 여유와 풍요로움을 전하는 다채로운 컬러의 단색여백은 차라리 찬란한 허무를 예감하는 아우라(Aura)인지도 모른다. 돌고 도는 인연 속, 비상(飛上)을 꿈꾸는 몸부림처럼 이 범속한 나들이로 보이는 행진에 왠지 삶의 무게라는 굴레가 언뜻언뜻 스쳐 가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그에게로 날아와 주변을 맴돌았다. 사냥꾼의 눈앞에서 나비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작들로 가득한 지게의 무게, 어깨위로 짊어지고 다니던 짐승들의 무게, 암벽에 매달리던 그의 손가락 끝에 실린 무게, 야생의 산림 속에서 그가 보낸 세월의 무게가 하얀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위로 옮겨 앉았다.” <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Erri de Luca) 지음, 문예중앙>

 

 

=권동철 문화전문위원, 에너지경제 2015318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