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류영신((RYU YOUNG SHIN)|나무 그 참다운 춤사위의 精魂 (서양화 류영신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3. 11. 17:09

 

Cluster, 91×60cm oil on canvas, 2013 ADAGP 

 

 

 

밤 열차에 몸을 싣는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지만 겨울이면 바위밖에 보이지 않는 신기했던 고향뒷산이 문득 그리웠다. 멀리서 보면 병풍 같은 그곳엔 오랜 연륜의 미루나무가 빼곡했다. 거뭇거뭇한 껍질의 나목(裸木)이 노을에 비춰질 땐 신기하게도 은색으로 갈아입은 건장한 몸매를 드러냈다. 누구에게나 격랑의 세월이 있게 마련. 달빛마저 흐린 밤, 내 젖은 눈가에 비친 나무의 춤. 오오! ()들의 행렬.

 

 

열망과 시선 색채의 율동미

화면은 이른 아침 깨끗한 햇살이 스며드는 싱그러운 감촉이 전해진다. 곧거나 휘어지거나 제 각각 자연스럽게 성장한 군무(群舞)의 형식미는 살아있는 생체(生體)임을 판단하게 한다. 작가는 지난 1992년 러시아로 그림공부를 하러 떠났었는데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창밖의 자작나무 숲은 환상이었다. 하얀 눈 속에 뽀얀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장엄했다.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은 아름다움 이상의 깊은 경이로움으로 내게 밀려왔다.”

 

그는 1995년 서울 신사동 인데코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이후부터 줄곧 나무를 대상으로 작업해 오고 있다. “자작나무와의 만남이 내 화업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그 숲의 강렬한 인상이 오랜 세월을 두고 영감을 샘솟게 한다. 크나큰 인연이다라고 했다. 2012년까지 그는 100호 이상 대작(大作)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집중력 강한 열정을 입증했다. 2013 미루나무를 주제로 반추상의 군상(Cluster)연작을 선보인다. 두터운 마티에르의 몸통, 무리지어 서 있는 리듬, 스며드는 빛의 조화로운 하모니 그리고 보색(補色)의 대담한 색채 운용으로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기는 임팩트(Impact)를 선사했다.

 

 

Cluster, 55×38oil on canvas, 2013 ADAGP

 

 

작가는 나무들이 군무의 동작을 취하면서 32장의 무대를 펼치고 있다. 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생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또 내겐 만족감과 흥분이 되는 회화적 흥미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비구상적인 패턴의 활용은 자연에 대한 시선과 감성의 표현이자 질서이고 색채와 형식의 초점이라고 메모했다.

 

최근작업에서는 나무의 몸마저 해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나의 조각 혹은 움직이는 작은 물상(物像)으로 인식됨으로써 하늘에서 쏟아지듯 혹은 지상으로 빨려들 듯 한 우주의 블랙홀(black hole)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전의 평면성에서 입체적 느낌의 속도감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Cluster, 195×100oil on canvas, 2013 ADAGP

 

 

참다운 춤사위의 정혼(精魂)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교향곡 제6비창이 고통을 어루만지며 상흔으로 얼룩진 나무의 몸을 치유하는 듯,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운율의 운치가 드러난다. 화면은 간결과 응축의 엄숙함마저 느끼게 한다. 공존의 표상(表象)으로서 나무의 의인화는 오늘을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세를 환기시킨다.

 

지혜의 은유로 나무와의 동일성을 자극하고 너울을 훌훌 날려버리게 하여 참 기쁨의 춤으로 인도한다. 곧 자아를 일깨우는 이 강력한 흡인력이 그의 작품 힘인 것이다. 오늘은 숲의 광장으로 가서 도 덩실덩실 함께하고 싶다. 돌이켜 보건데, 허물없이 한 덩어리로 춤을 추어본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출처=에너지경제 20153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