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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작가 임종두 (LIM JONG DOO)|무엇에 홀렸나…자아도 벗어버린 욕망의 폭주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2. 25. 22:06

 

 

▲작품 달리달리는 임종두 화백이 지난 2011년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야 붓을 놓을 수 있었던 대작(大作)이다. 가로12세로220크기다. 지면의 작품은 기승전결(起承轉結) 에 해당하는 욕망을 향한 질주를 표현한 부분도(部分圖)이다. 그는 이 작품을 장지에 석채로 작업했다. 석채는 입자가 굵고 아교에 의존해서 접착하는 등 몸으로 체득하기 쉽지 않아 다루기가 까다로운 재료이다. 인물로 시대의 패러다임을 표현해내는 화백이 이와 같은 재료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同行, 112.2×162.3장지에 석채, 2011

 

 

 

성지(城址)인가. 첫새벽 물안개 자욱하게 번지는 텅 빈 그루터기. 듬성듬성 이끼 낀 무너진 석축사이 피어오른 노랑제비꽃봉오리 가뭇없이 떨어질 듯 휘날린다. 무수한 꽃잎이 봄비처럼 쏟아진다. 그때였다. 비천상(飛天像)이 홀연히 내려와 우아한 자태의 옆모습으로 자애로운 말을 건네며 사라져갔다. ‘우주적 시각에서 보면 너희들도 날고 있는 존재. 그대이름은 여인, 꽃과 하나. 삼라만상의 정중(正中)

 

 

인생전체가 아름다움인 것을

 

황금의 상징인가. 대지를 뒤덮고 있는 노랑물결을 헤치며 벌거벗은 채 맨발로 달려가는 여인들. 체면도 염치도 눈치도 아랑곳없이 무엇이 이토록 일시에 단하나만 바라보게 끌어당기는가. 화면은 절실함을 쟁취하기위한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보와 지식이 넘쳐흐르는 디지털시대에 원시적으로 달린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함일까. 작가는 여성의 인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이면, 인생의 허무와 존재에 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청춘만이 아니라 인생전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함의(含意)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품엔 이른바 진선미(眞善美)가 다 들어 있다. 화백은 결국엔 자기도 모르고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욕망이란 속성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으로 그렸다. 우주적 요소와 인간의 고귀함을 가장 많이 가진 존재자가 여성이라 생각하는데 여자를 알면 전 지구적인 것이 이해되지 않겠나하는 그런 의미도 담았다라고 피력했다.

 

 

한편 그는 지난 1993년 백악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월남파병, 이농(離農)과 도시빈민층의 소외 등 실존문제가 부각되던 시대에 주체적 인간에 대한 철학적 요소를 선보였는데 이때의 생토(生土)’시리즈는 1997년도까지 이어진다. 1998~2005년까지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천지인(天地人)-삼합(三合)’시기로 인간의 문제를 자연과 연계시켜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상세계에 대해 고민했다. 2006년부터 삼합과 같은 맥락이지만 깊이가 진화한 동행연작을 발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 ‘신비(神秘)’ 등도 이 테마의 소주제로 타인이나 타() 대상물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주제가 되고 있는데 특히 여인의 머리 꾸밈새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밤하늘 은하수와 산 봉오리들 그리고 물줄기가 모여 이룬 청정한 폭포수 아래 평화로운 물고기와 여인은 상생(相生)의 조화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인식지평은 동등한 입장으로서의 관계성 즉 같이 가고 어울려 사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神秘, 162.3×112.1장지에 석채, 2013

 

 

 

교감, 꽃과 여인의 목마름

오랜 가뭄 끝, 쏟아진 한줄기 소낙비를 흠뻑 맞아 더욱 선연한 붉디붉은 입술의 꽃. 화화(火花)처럼 맨드라미가 장독대 옆에 다시 살아났다. 달빛아래 미묘하게 떨리는 닭 볏 같이 붉은, 시들지 않는 염정(艶情)의 관능. 꽃도 여인도 목마름은 매한가지였던가 보다. 희열 가득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는데 자연도 사람도 상대를 읽어내는 그것이 교감이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 했던가. 인간이란 우주의 축소판이라며 신념 가득한 눈빛으로 나직하게 속삭이는 여인의 머리에서 신비롭게 꽃이 피어났다. 만물을 소생케 하는 그녀의 마음처럼 자연이 되고 싶은 몰아(沒我)의 황홀을 감싼 안개가 봄날 졸음처럼 제자리에 정지된 듯 머무는데.

 

이제 돌아다보자고 누가 말할 때 그것은 기쁨인가 기쁜 놀라움인가/그것이 기쁨일진대 낯선 벌판을 내달려와 먼지 속 그 기쁨 뿌리쳐 눈감으면/그 바람 찬 나날이었을지라도 거기에서 태어난 목숨이고저 만발한 꽃으로 흔들리고저/새로운 것은 결코 새로움만으로 오지 않는다<고은 , 내일, 창작과비평사> 

 

                                          

   

           =권동철, 에너지경제 20152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