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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KYUNG HO〕 화가 전경호| 가슴으로 담아낸 삶의 본바탕 (서양화, 서양화가 전경호, 전경호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1. 13. 11:53

 

194×112cm, 2008

 

 

나목(裸木)들이 무리지어 서서 저기 아래 강과 들길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었다. 새벽안개 물감처럼 자욱하게 번지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휘익 몰아치면, 드넓게 펼쳐진 들녘사이 나지막한 집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은 나무, 들판, , 바람과 소박한 마음의 농부들이 옹기종기 조그마한 터를 잡고 이웃들과 정겹게 살아가는 우리 산하(山河)의 선율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평과 수직리듬, 여러 색한지의 경사면엔 잊고 살아 온 오래전 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곤 했다.

 

작가는 지난 1993년 첫 개인전을 일본 동경의 스페이스21 갤러리에서 가졌다. 당시 타마미술대학원(多摩美術大学院) 졸업 작품전을 겸한 기하학적인 판화작업이었다. 그리고 1994년 귀국하여 이전과 다른 작품을 선보였는데 조선일보미술관에서 150~300호 동판화작품을 전시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은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100×45cm, 2013

 

 

변화의 전환점을 맞게 된 배경을 그는 이렇게 밝혔다. “이전의 기하학적인 작업이 머리였다면 가슴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던 시기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어릴 때 뛰어놀던 산이나 들에서 조형세계를 찾게 된 것이었다.”

 

이후 석채와 아크릴이 혼합된 작업과정을 지나 2004년 색한지를 만나게 되는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마치 장엄한 대자연의 신비를 품은 듯 작품의 선과 면들은 그 무엇에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게 밀려오고 또한 자연스럽다. 강한 대비, 거친 표면질감, 단순화되어 상징화된 형상 그리고 찬색과 따뜻한 색의 조화로움 등은 응축된 회화의 미감을 우려낸다.

 

그는 닥나무 천연재료 한지의 색감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색이다. 이것을 하나씩 하나씩 20여장 배접해 형형색색 드러나는 절단면 색깔은 같으면서 조금씩 다르다. 작업자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원하는 결이 나올 때까지 한지와 친숙해지기 위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라고 토로했다. 캔버스엔 한지를 붙였다가 다시 때어낸 흔적을 그대로 남기는 작업도 선보이는데 그것이 드러나는 미학은 또 하나의 조형미를 선사한다.

 

 

   

자연-존재(Nature-Existence), 80×45, korea paper on canvas, 2013

 

 

처음에 색한지를 붙였을 때 작업의 욕심이 앞섰던 경험이 있는데 어느 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비우려했고 어떤 경우는 그냥 두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라고 보았다. 우연에서 얻은 것의 억지스럽지 않음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인데 작가가 어렵게 작업하면 보는 사람도 어렵게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적인 대상에서 출발하여 자연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삶 속에 본바탕을 두려고 한다. 바람과 공기 등 무형의 흐름까지 아늑하게 품는 한국인의 순수한 서정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존재성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전파하고자 하는 그가 획득한 매우 소중한 것은 우리의 전통 재료에서 일궈낸 독창적 성취일 것이다.

 

 

   

화가 전경호(JUN KYUNG HO)

 

 

나는 대구광역시 팔공산 인근 농촌에서 성장했다. 그림 소재나 내용이 나의 성장 환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느 농촌도 복숭아, 사과밭이 펼쳐진 시골풍경이지 않겠는가. 저녁노을이 산허리를 휘감는 뒷동산에 앉아 내려다 본 저 멀리 도심은 네온사인들이 하나 둘 켜졌었다라고 회상했다.

 

우리 전통 색한지를 재료로 그 결이 전해주는 리듬과 깊이감은 간결함과 중후함을 포용하는데 보통 100호 작업하나를 하는데 3개월여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종이를 자르고 배접하는 과정 등이 모두 수작업이다.

 

작가는 심상을 고요하게 흔들림 없이 자연 속에서 존재를 확인시키고 또한 찾는 과정이 내 작업의 근원이다.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인 정신성이 무엇인가를 사유의 중심에 놓고 작업과 마주대한다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관람자의 반응 등 느낌을 전해달고 했다.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무척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색한지라는 한국적인 천연소재의 자연스러움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또 색감이나 결의 흐름에 매료되는 것 같았다.”

 

화가 전경호는 중앙대학교 회화과 및 일본 다마미술대학원 미술연구과 회화전공 졸업했다. SPACE-GALLERY21(일본, 동경), 조선일보미술관, 한원미술관, 사간 갤러리, 통큰 갤러리기획초대전 등 개인전을 15회 가졌다.

 

 

 

      출처=월간 Leaderpia(리더피아) 20151월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