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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태영(Arist, KIM TAE YOUNG)|따뜻한 정경, 참 대견스러운 꽃(화가 김태영,김태영,김태영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11. 9. 18:43

 

 

 

시장기 느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저마다 가을꽃이며 밤을 주워 킥킥거리면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노란 감국(甘菊)들은 오솔길을 수놓고 저녁으로 물들어가는 나지막한 산 허리춤엔 가늘게 드리운 햇살이 얕은 개울을 건너 들녘으로 번져갔다.

    

솜이불처럼 소복하게 쌓인 낙엽을 헤치고 철늦게 피어난 하얀 기생꽃이 가녀린 자태로 부드러운 햇살을 머금은 채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잎들이 바람에 뒤척일 때마다 하얀 꽃은 동경의 눈빛을 두리번거렸다. 걸음을 멈춘 당신이 꽃을 가슴에 껴안듯 조용히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었지. ‘아아, 놀라워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순수 영혼을 닮고 싶어. 탄생은 기쁨, 축하해!”

 

 

   

 

 

갈잎들은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며 대지와 분주히 교감하고 있었다. 퇴적의 역사를 이루는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 자양분에 야생화들의 사랑이야기가 철마다 피어났다. 푸르른 하늘을 온몸으로 품던 첫날의 꽃봉오리. 꽃잎에 아롱진 이슬방울에 살포시 날아든 고추잠자리 한 마리는 진한 향기에 도취해 빙빙 돌고 있었다. 부지런히 날개를 퍼덕이며 꽃 한 송이 피어내던 진통의 땀을 식혀주던 그 날개여.

 

 

   

 

 

겨울비 지나간 밤하늘 별들은 더욱 또렷하게 반짝였네. 나무와 숲과 새들이 잠이 들면 오솔길은 선명하게 굽이굽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내려오던 산길을 지나 커다란 바위를 돌아서는데 가늘게 피어난 연자주색 해국(海菊)무리가 치마폭처럼 펼쳐져 있었지.

 

그만 더 이상 가질 못하고 주저앉아 야생화 앞에서 훌쩍거리는데 포르르 오목눈이 새 한 쌍이 어깨를 다독이듯 스쳐 날아갔다. 슬픔이 가슴팍을 에이는데 해풍에 하늘거리며 꽃잎들이 춤추며 꿈의 노래를 불러주었네.

 

 

   

 

 

한낮, 먼지 풀풀 날리던 흙길이 별빛아래 새로이 생()의 길로 거듭나 있었다. 후후 입김을 불며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새겼었지. 이름 없이 사라지는 유성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무리처럼 나의 희망도 쉬지 않고 사랑할거라고. 한걸음 내딛다 뒤돌아보니 활짝 웃으며 힘내어 살라고 손 흔드는 화답의 미소가 용기를 북돋았네.

 

 

   

 

 

강물 같은 세월 아련한 약속

서리 맞은 홍시를 파먹는 까치 한 마리가 잎이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언제부터 새와 홍시는 서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었을까요. 마지막 한 개 남은 홍시를 새에게 배려했을 때 감나무는 봄이 올 때까지 긴 동면(冬眠)의 휴식에 들어가겠지요.

 

 

   

 

 

새들은 혹독한 한파를 이겨내는 훌륭한 양식을 얻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따뜻한 정경을 전해주지요. 볏짚과 갈잎을 모아 만든 둥그런 거름구덩이 둘레엔 키다리 코스모스가 흔들거리며 자태를 뽐냅니다. 밤이면 찬 공기가 들녘으로 내려올 때 거름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가녀린 코스모스를 따뜻하게 감싸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초겨울 첫눈을 맞으며 청순한 자태를 뽐내며 그렇게 도도하게 하늘거리며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참 대견스러운 꽃입니다.

 

 

   

 

 

그렇게 또 아이가 어른이 되듯 강물처럼 세월이 흐릅니다. 한곳에 붙박아 어김없이 피어나는 야생화 꽃을 바라보며 언젠가 내 뜨락에 지천으로 꽃밭을 만들겠다던 유년의 약속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초겨울 밤입니다.

 

 

    

출처=월간 Leaderpia(리더피아) 201411월호 기사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