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cene, 162×122㎝, ink & color on paper over panel, 2011
꽤 오래전 이야기이다. 낯선 곳으로 떠나던 친구가 작은 화분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바빠서 돌보질 못했는데 잘 키워보라고 건넸다. 그런데 꽃은커녕 겨우 한줄기가 희미하게 살아있는 것 같아 그냥 넝쿨문양 화분이 앙증맞고 옹골차게 보여 가져왔었다. 한 일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늦은 아침에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싹이 돋았나싶던 화분에서 수직으로 힘차게 뻗어 오른 찬란한 황금빛 꽃 한 송이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질 않는가!
my seat,100×120cm, 2008
은유적 감각공간의 기운찬 식물
에너지로 충만한 검푸른 빛깔의 신선한 잎들이 붉은빛 지붕들의 기운을 더욱 돋보이게 드러내 준다. 그들은 교호(交好)적으로 공존하며 간결하면서 또렷한 열린 공간을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마치 피크(peak)의 장면이 서서히 다가오듯 풍경이미지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러한 자연스러움엔 밸런스를 유지한 사유의 관점이 대단히 감각적인 기제(機制)가 되고 있다.
투시도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평면적으로 보이는 화면은 기하학적 구조로 정돈되어 있다. 수묵드로잉의 식물은 화면의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에 집 등의 은유적 대상과 식물로 지칭되는 자아(ego)는 형이상학의 동일성으로, 공존한다.
breeding ground_germinate, 131×162㎝, 2011
작가는 2003년 전후, 수묵추상 계열의 작품을 통해 상징성과 심리적 긴장감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초기작업을 선보였었다. 2006년에 들어와 작가의 경험과 감성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거울과 같은 오브제가 투입됨으로써 소통에 있어서 의식과 공간을 확장한다. 이후 2008년경 나무들의 총체인 숲의 어두움이나 도시의 메타포(metaphor)를 읽어내는 다개체적(多個體的)자아, 2012년 이후 화려하게 표현된 주변의 색채와 형태는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는 주변상황을 표현해내고 있다.
식물과 확장된 숲 그리고 인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점은 곧 작가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조형세계의 핵심과 통한다. 그것은 쭉쭉 가지를 내뻗는 식물의 성장이 ‘나’에게도 적용되기를 희망하는 것의 다른 표현일 텐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물과 ‘내’가 모두 생명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safeguard_blossom, 56×75.5㎝, 2011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공간의 상황은 색감으로서 암시된다. 색 면으로 처리된 시각적 장치는 심리적 긴장감과 불안감 또는 공간에 대한 설명으로서 또 다른 장면으로 연출된다. 현실과는 다르게 또 다른 공간에 대한 위로가 되며 존재하는 것이 화려한 색 면이다.”
beyond scene-s, 45.5×53㎝, 2011
왜소한 개체 갈망의 성장실루엣
식물, 화분, 집들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교감을 시사한다. 식물의 역동적 생장(生長)의 운율이 경쾌감을 전할 때 관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것과 동화되는 마음의 충족을 느끼게 된다.
그때 ‘나’는 식물의 그것처럼 끊임없이 새롭고 또 거듭나게 되는 용기와 비전을 꿈꾸게 된다. 곧 스스로의 존재에 참되게 다가가는 인식변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시간이 가르치는 생에 대한 미학과 신비로운 우주의 질서가 이젠 깊이 기억으로 자리하고 에너지를 얻는 동기부여의 지각(知覺)으로 환기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는 장면(scene)인 것이다.
△출처=월간 Leaderpia(리더피아) 2014년 10월호 기사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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