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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IN SUK〕서양화 김인숙 작가|폭풍한설 광야 헤매다…비로소 만난 너! (서양화가 김인숙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2. 11. 20:03

 

 

 

 

 

나비 한 마리 가뿟 날아갔나, 꽃잎 세세히 흔들리네. 연두색 스카프가 잘 어울린 그대가 왜 생각났는지 몰라. 아직 녹지 않은 눈 언덕을 미끄러지듯 달려와 털옷을 벗어 입혀주며 보기보다 자그만하군이라던 당신. 들꽃에 홀려 너무 멀리 왔나. 바위아래 휘황찬란한 연분홍 꽃 한 송이여. 은빛물결 발돋움하는데 다정(多情)이 더, 무서웠어요!

 

 

매혹과 청초의 극적분위기

쾌활하게 재잘거리는 들꽃무리를 지나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들녘.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선율이 흐른다. 잡힐 듯 먼 모노톤 배경과 현재성을 드러내며 활짝 핀 나지막한 목소리의 꽃이 전하는 말은 긴 겨울잠을 일깨우는 각성의 공명으로 다가온다. 화면은 그림의 정신에 치중하는 격조를 중시한 문인화(文人畵)처럼 정결하다. 선연히 다가오는 잎맥은 생기로 기운차며 가녀린 꽃은 청초하고 고매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그 너머 세월의 자국에 흩뿌려진 쓸쓸한 진눈개비 언덕, 황토색 황혼이 드리운 겨울 숲에 너무나 찬란함으로 하 고독한 꽃이 하늘거리며 서 있다. 구상과 비구상의 극적대비 그리고 심중의 촉발을 일으키는 단순색채의 배경은 가없는 수평선처럼 아련한 기억을 헤아리게 한다. 이윽고 부질없는 생채기들을 놓아버린, 스스로 깨달아 피워낸 홀가분함이 윤기를 더 한다.

 

 

   

 

 

작가는 지난 2001년 서울시 종로구 소재,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일관성에 주목하기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캔버스에 펼쳐 보였다. 울퉁불퉁한 골판지나 헝겊, 나무에 그림을 그리거나 에스키스(esquisse)한 것을 뜯어 붙이기도하고 손, 발 등 인체부위를 물감으로 채색하여 찍기도 하여 전체화면을 구성한 비구상 작품을 선보였다. 그렇게 자연성을 직접적으로 끌어안은 화면은 자유롭고 웅숭깊은 의외성의 결과를 보여주는 발로(發露)가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캔버스위에 실크스크린 작업을 곁들인 판화에 몰입하게 된다. 2006년경 자연으로부터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꽃과 대화하고 주변기운을 받은 그 느낌으로 3년여 작업 끝에 2009년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게 된다. 2011년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자연전경의 파노라마를 펼침으로써 화면의 생동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응축에너지를 극적(劇的) 분위기로 단번에 끌어올리는 내공은 바로 김인숙 작가 화풍(畫風)의 핵심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성 그 감각의 정신성

누군가 말했다. 의미가 존재로 다가올 때 길을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행로의 첫걸음이라면 저 산 너머 폭풍한설 빈 광야를 터벅터벅 건너야 하는지도 모른다. 비로써 그 후에야 만나게 되는 꽃 한 송이 그리고 뜨거운 포옹. 그것이 해후의 진실이다. 가녀린 줄기에서 피워낸 왜소하고 미약한 듯 보이는 한꽃은 그러나 하나라서 더욱 구상적이다. 극사실의 꽃 묘사 뒤편 정경과의 어울림은 순전히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에 기인한다.

 

지극한 생명이라는 현재성을 투영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 앞에서면 육신보다 정신에 무게를 둔 울림이 더 부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의심스러운 것, 알려져 있지 않은 것, 내게는 낯선 것으로 내가 지각하는 것들이 참된 것, 알려진 것, 한마디로 나 자신보다 더 또렷한 것으로 나에게 인식되다니.” <성찰, 르네 데카르트(Ren Descartes) , 책 세상>

 

 

   

 

 

(인터뷰)꽃은 불완전한 자아에 충고하는 정신의 긴장을 이끄는 길잡이

 

새해 첫 절기 입춘(立春)이 여느 해 못지않게 반가웠던 포근한 날이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修理山)자락 조용한 주택가 한 건물 4층 작업실을 찾았다. 밖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통유리는 겨울 산 풍경을 그대로 실내에 끌어들였다. 때마침 오후의 햇살이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와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이 작업실에 정착한지 15년 즈음 되었죠. 첫눈에 반했어요. 마치 산 속에 있는 것 같은데 봄이면 꽃 속에 여름이면 숲속에 그리고 가을낙엽과 겨울설경에 묻혀 꿈꾸듯 그림을 그립니다.(웃음)”

 

그도 그럴 것이 창을 열어 놓으면 나비며 잠자리며 새들이 제집 드나들 듯 들어와 놀다간다는 것이다. “저기 창가 다홍색 베고니아도 나비가 와서 놀다가라고 몇 년 전에 사다놓은 화분 이예요. 지난 해 봄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노랑나비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아 조는 듯 가만히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의 의중을 읽었다는 공감 같은 것이랄까. 눈물이 날만큼 황홀했어요.” 요즈음 작가의 중요한 일상 중 하나는 화실 뒤편 산을 산책하는 것이다. “매일 달라요. 어린아이가 쑥쑥 자라듯 대지의 왕성한 움직임을 느끼게 되는데 이곳을 오르내린 세월이 말해주듯 인근의 꽃자리를 다 압니다. 거기에 귀를 대고 그들이 전하는 봄소식도 듣고 속삭입니다. ‘자연으로부터시리즈의 원형질인 셈이죠.”

 

작품화면 꽃은 완전성을 소망하는 상징으로 작가는 그것을 무한자연의 대표적 조형언어로 인식하고 있다. “위안과 경외의 대상이기도하지만 불완전한 자아에 충고하는 정신의 긴장을 이끄는 길잡이기도 합니다. 사실적 표현의 꽃과 배경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어떤 기운은 그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서양화가 김인숙(KIM IN SUK) 작가는 동덕여대 미술대학 및 홍익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갤러리 라메르 등에서 개인전을 9회 가졌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린 ‘2014 살롱 앙데팡당()에 출품 참여했다.

 

 

 

=권동철 문화전문위원 출처=에너지경제 20152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