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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정옥-낙망 딛고 질주하는 활력의 응전(민화작가 이정옥,이정옥,이정옥 작가,인사이트코리아)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6. 16. 03:07

 

 낙원백마도(樂園百馬圖), 150×700실크위에 채색, 2014

  

 

첫새벽. 청청한 물줄기 쏟아지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폭포수. 성취감과 여유가 묻어나는 멱 감는 달콤한 휴식의 살결엔 윤기가 흘렀다. 조용하고 질서정연하게 묵은 때를 벗는 자연의 품에서 표정은 밝고 강한 자신감으로 윤기가 흘렀다.

 

치열한 생존의 광야(廣野). 변화와 도덕률의 유기적 대응과 조화가 많은 위기순간들을 극복해낸 합리적 판단의 잣대가 되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는 듯 했다. 이완된 근력, 맑은 정신상태에서 습득한 경험과 시스템결함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며 서로의 발상에 깊은 신뢰와 전환계기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푸른 초원은 질주본능을 자극하며 설렘을 선사했다. 가벼운 장난으로 살결을 맞대며 무언의 우정을 확인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담론주제의 최우선으로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의 성장통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공동체의 안전한 생존을 위한 대안으로 글로벌네트워크 강화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핵심키워드로 소통(疏通)과 리더십이 역설되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났다. 또각또각 나무그늘에서 하나 둘 말()들이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완전한 몸 상태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벌써 선발대의 달리는 소리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희망으로 피어오르는 꽃처럼 이상향(理想鄕)의 힘찬 행진이 눈부셨다. 무한한 상상력의 신 성장동력 클러스터(cluster)가 미래의 약진(躍進)을 이끄는 힘으로 이미 가동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통, 89×68, 실크위에 채색, 2013

 

 

 

깨달음 하나, 결국 사람이야

2011년도부터 이 작업을 시작해 꼬박 2년에 걸쳐 완성했으나 20여 년 전부터 가슴속에서 그리고 있었다고 했다. 가로7m미터의 실크위에 채색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긴 시간의 작업이었다. 육체적 어려움이 나를 괴롭혔지만 극복해야만 했었다라는 토로처럼 그러나 고통과 더불어 오는 행복감도 화가가 누리는 몫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숱한 방황과 질문을 끝내고 돌아본다. ‘그림은 결국 사람이야하는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이제 겨우 우주 삼라만상, ()을 살펴내는 눈 하나를 갖게 된 듯하다.”

 

()을 그리면서 말을 닮고 싶었으니 참으로 먼 길을 질주한 셈이다. 대작(大作)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화가로선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큰 기쁨이었으리. 낙원(樂園)의 꿈. 형태적으로 너무나 완벽하게 생긴 말()과 인간 삶이 녹아든 이상향의 반추(反芻). “기나긴 노정(路程)의 작업을 마무리해 놓았던 새벽시간, 붓을 놓고 눈을 감았다.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찼던 청춘이 있었다. 어찌 그것뿐이었을까. 불필요한 갑옷 같았던 어려운 계율과 반항.

 

기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그림하나 이룬 감격과 스스로 격려의 눈물위에 번지는 뜻 하나가 있었다. 어제잘못을 오늘 범치 않는 것이 신()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소통, 89×68

 

 

 

온 곳으로 돌아가는가, 덧없음이여

쑥뜸처럼 가슴은 타는데 십일홍(十日紅)향기 허공에 부유하는구나. 다홍빛 관능 비단치마가 살포시 하늘거릴 때마다 이슬을 머금고 피어났나, 속치마 모란이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피어올랐다. 어찌 미추(美醜)의 판단을 품었으면 강아지가 주인을 따르랴. 선악과 시비를 떠난 무상의 충복(忠僕), 무상의 천지간, 화법(畵法) 이전의 화법이여!

 

눈물은, 절실하고 숭고한 순간에 나오는 장강(長江)이어라. 구불구불 흐르는 강바람에 스르르 눈을 감는다. 찰나의 졸음이 오셨나.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안개 속 애견이 뭐라 얘기를 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품을 떠나는 사랑스러운 것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데 이별소식처럼 진자줏빛 꽃잎 한 장이 눈물범벅 위 살포시 내려앉는다.

 

금조탈각반초환(今朝脫殼返初還).’ 풀이하여, ‘이 아침 허물 벗고 온 곳으로 돌아간다.’<조선시대 부휴(浮休)대사 선수(善修), 15431615>

 

 

=권동철, 전문위원/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출처=경제월간 Insight Korea(인사이트 코리아), 2014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