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INSIGHT FINE ART]사진작가 최영진,포토그라퍼 최영진,Photographer CHOI YOUNG JIN,사진가 최영진,최영진 작가,시각문화,Visual Culture, Art,시각문화아트,Visual Culture Art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2. 7. 6. 21:01

백사마을, 200x133㎝, 2019

 

비의 운율에 비치는 본질회귀의 시각문화

 

 

“드러눕고 싶어서 나무는 마루가 되었고, 잡히고 싶어서 강철은 문고리가 되었고, 날아가고 싶어서 서까래는 추녀가 되었겠지(추녀는 아마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치켜 올리고 싶은 게 있어서 아궁이는 굴뚝이 되었을 테고, 나뒹굴고 싶어서 주전자는 찌그러졌을 테지. 빈집이란 말 듣기 싫어서 떠나지 못하고 빈집아, 여태 남아 있는 거니?<안도현 시 ‘어느 빈집’, 시집-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刊>”

 

1967년 청계천, 용산 등지의 도심철거이주민들이 모여들었던 서울 노원구 불암산 끝자락 백사마을. 숱한 애환을 가슴에 묻고 내일의 희망을 피우던 열망의 시절을 뒤로한 채 지금은 많은 빈집들로 적막감이 맴돈다. 그러나 그곳엔 연탄을 다 떼고 미끄럼을 방지하려 쌓아놓은 풍경과 작은 공간을 일군 텃밭엔 상추가 싱그럽게 자란다. 허물어진 담벼락, 지붕이었던 자리에 맴도는 공허감위로 비오는 날의 말간하늘이 미묘한 감정의 흐름으로 대비된다.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과 6.25전쟁, 경제개발이라는 숨 가쁜 시간을 달려 온 한국근현대사의 숱한 굴곡을 닮은 듯 깊게 패인 가파른 길이 맨살을 드러낸다. 한때 누군가의 부푼 야망의 버팀이 되어준 대지. 그 땅의 시멘트콘크리트가 부서지며 자잘한 모래로 되돌아가는 모습은 세월의 덧없는 상념을 부른다. 타버린 빈 창틀 너머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경이로운 생존의 지속.

 

 

66x100㎝, 2012

 

◇공감과 소통의 인문학

사진가 최영진 백사마을연작엔 자연에 순응하는 여유로운 삶의 흔적들이 내재돼있다. 작가는 1997년부터 25년여 동안을 지속적으로 비가 오는 날, 백사마을과 그곳에 정착해 온 삶의 체취(體臭)를 카메라에 담아오고 있다. 개발행위가 금지되었던 그곳의 다큐멘터리사진엔 빈집들과 고양이, 나무 등 마을의 내부자들이 소통하고 공존해 나가는 현장을 보여준다. 리얼리티역사성과 회상의 파편들은 작가의 독창적 개성언어로 해석되어 투영된다.

 

그래서인가. 그의 사진은 섬세하면서 따스한 시선으로 대상을 탐사하는 내면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소통의 통로 또 관람자로 하여금 삶의 정체성(identity)을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시대 백사마을에 뿌려지는 빗줄기 속에서 휴머니즘을 포착해내는 포토그라퍼 최영진(Photographer CHOI YOUNG JIN) 시각문화아트(Visual Culture Art)의 특별함과 다름이 없다.

 

 

백사마을, 100x66㎝, 2008

 

최영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오랫동안 수리하거나 신축하지 못하는, 자연환경에 노출된 공간이다. 언젠가 아파트가 생기면 과거의 주소가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게 될 텐데, 어떻게 보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을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기억, 영혼의 고향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모든 것이 변할 수밖에 없는 그 순환관계를 담아내고 싶다. 실재(實在)가 사라졌을 때 그것을 대신하는 사진의 역할처럼 훗날엔 이 사진들이 현존을 보여주지 않을까!”

 

 

200x133㎝, 2019

 

=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22,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