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사건이다!
반투명한 노란 꽃병에 꽃들이 짐짓 아무렇다. 아침 햇살에 흔들리는 꽃 그림자가 스티브 라이시(Steve Reich)의 음악을 타고 흐른다.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춤이 잇따른다. 무표정한 동작이 태엽이 풀린 듯 되풀이된다.
줄창 반복된다. 먹고 자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 먹고…. 전쟁 중에도 먹고 자는 일이 대부분이다. 단 하루 동안 혹은 몇 시간의 전투로 생사가 갈리기 전까지 반복된다. 전우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울음을 그치고 먹는다. 먹고 다시 울음을 이어간다. 일상이란 게 그렇다.
하루를 마치고 얼마간의 잠을 자고 나면 다시 해가 뜨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이 온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삶의 대부분이다. 일상은 지루하다.
가끔 사건이 튀어 오른다. 한 끼를 거르거나, 빙판길에 고꾸라지거나, 문득 쳐든 얼굴에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을 눈부셔하며 한줄기 존재의 눈물을 흘리거나, 공사판 옆을 지나가다가 일꾼이 떨어뜨린 망치를 머리에 맞고 기절하거나…. 작고 큰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들의 나머지, 거대한 나머지가 일상이다.
매번 다른 아침을 궁리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에 어제와의 이별이 있다. 아침은 사건이다. 볕이 쨍쨍한 날, 손 갈퀴 사이로 흘러내리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리는 아침을 눈 끔뻑거리며 찾아 나선다.<전시명-아침, 글=류장복 작가, 2022.4.11.>
◇서양화가 류장복(RYU JANG BOK, 柳張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2022 <아침..>, 통인갤러리, 서울
2021 <철암 랩소디>, 아트레온갤러리, 서울
2019 <고요 속으로>, 서울대학교병원 대한외래갤러리, 서울
<Saint Petersburg>, 길담서원, 서울
2017 <지금 여길 감각하고 그때 거길 기억한다>, 권진규미술관, 춘천
2014 <투명하게 짙은>, 일민미술관 2전시실, 서울
△저서
화가의 마음과 눈으로 보는 화가의 마음과 눈<타이미지, 2013>, 한남동, 사람들<타이미지, 2011>, 철암에서 그리고 쓰다<박영률 출판사, 2008>
▲전시=류장복 ‘아침’개인전, 5월18~6월12일 2022년. 통인화랑.
△권동철=6월1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