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풍요의 여신 ‘Flora(플로라)’ 그리고 조선후기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1758~?) 등의 작품에서 드라마틱(dramatic)한 장면을 차용, 컨템퍼러리 스타일(Contemporary Style)의 여인심리묘사로 미술애호가들의 호평을 받는 여류중견화가 임혜영 ‘일흔 즈음에-화양연화’기획초대전이 열린다.
서울종로 인사동길 마루아트센터 1관(1층)에서 6월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되는 이번 임혜영 작가 53회 개인전에는 100호 대작부터 다양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총30점을 선보인다. 평소 작업실을 오가며 자연이 선사한 감흥의 영감들을 터치 한 ‘화병의 꽃’연작, 사계를 담은 풍경화 도 관람의 재미를 더 한다.
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천경자는 우리 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유난히 꽃과 여인이 자주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며, 작가는 그것을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보듯이 꽃을 든 화폭의 자화상 그림들이 자꾸 아른거린다.
이 두 여류화가의 작품에는 공통으로 모두 여인과 꽃이 등장한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그림에는 여인의 초상을 배경으로 펼쳐진 꽃들이 영감을 얻은 축제처럼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품에는 각각의 서로 다른 특징과 독창성이 명확히 존재한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 꽃이 소재로서 장미꽃을 한 다발 안고 있는 운명적인 여인으로 등장한다면, 임혜영 작가의 화폭에는 환상적인 무늬의 꽃들이 배경으로 몽환적인 표정의 여인 주변을 싸매고 있다.
최근 임혜영 작가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양식은 <환생> 시리즈와 <Flora> 시리즈이다. 임혜영의 작품에는 아주 집중적으로 혜원의 그림이 본인의 작품과 절묘하게 쌍을 이루어 최적의 하모니를 이루어 내고 있다. 혜원의 화폭 위에 겹쳐진 임혜영의 사랑스러운 여인, 그녀는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채 밀회의 현장과 만나는가 하면, 어느 따뜻한 봄날 양반과 기녀가 은밀한 밀회의 현장에 임혜영 표의 예쁜 여인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른 그림에서도 대부분 화면의 배치에서도 좌우로 혹은 상하로 당시 유흥의 풍경과 인물의 조화를 부드럽고 우아한 필선으로 따뜻하게 일체화하는 작품들이 지배적이다. 마치 임혜영의 현대판 『풍속도첩』 이나 『미인도』로 불릴 만한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함은 조선 시대 풍경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들여 도시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꿈과 현실의 풍경을 결합하는데 있다.
작가는 그 시절의 임혜영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꿈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해석된다. 그러한 증거는 더욱이 가늘고 유연한 꽃의 필선과 오방색에 근거한 원색의 산뜻한 색깔과 풍성한 꽃에서 더 확인된다. 게다가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이 화면은 향긋하기도 다분히 몽환적이고 로망틱한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
배경이나 구성도 여인의 인물을 살리기 위해 배경을 생략하는 형식으로 꽃의 주변 배경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하는 초현실적 구성으로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부드러운 핑크빛 담채 바탕에 빨강, 노랑, 파랑의 경쾌한 빛깔, 음주 가무에 풍악이 있는 야외에서의 유흥 등이 작가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살짝 엿보게 한다.
모든 그림 속에서 마치 작가의 서명처럼 한결같이 등장하는 한 마리 새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새는 화폭에 따라 파랑새, 핑크빛 새, 노란 색의 새이기도 하다. 눈을 감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꿈을 꾸는 여인에 약방에 감초처럼 슬쩍 나타나는 그 새야말로 작가 임혜영의 마스코트처럼 보인다. 어쩌면 작품 속에 화가 자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바로 새일지도 모른다. 그의 화폭 속에 바로 새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영매(靈媒)이며 과거와 현재의 메신저이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아이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를 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글=김종근 미술평론가>
△5월23일 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