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一橫’과 흔적의 ‘평면조건’
청청한 바람이 내왕(來往)하는 양지바른 산등성 오랜 세월의 비문(碑文), 고고(孤高)한 수행이 피워낸 꽃 한 송이가 머금은 우주, 허세(虛勢)가 자리할 수 없는 평온의 숨결이 전시 공간 곳곳에 흘렀다. 작품세팅은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안정감으로 관람의 시선을 인도한다. 하나의 필획(筆劃)처럼 작품배치의 격조가 전시장에 가득 맴돌았다.
단색화가 ‘최명영(CHOI MYOUNG YOUNG)’전(展)이 4월21일 오픈하여 5월29일까지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더 페이지갤러리(The Page Gallery EAST)’에서 성황리 전시 중이다. 한국단색화 폭과 깊이의 심원(深遠)한 지평을 ‘평면조건’연작으로 펼쳐 보이는 최명영 화백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번 개인전은 100호 이상 대작 10여점을 포함하여 총50여점이 ‘최명영 50년 화업’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회화 관점을 여러 방법으로 해석한 드로잉”이라고 말한 것처럼 1970년대 중반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일상적인 호흡이 그대로 녹아있는 드로잉 40여점이 아카이브(archive)의미를 더 했다.
“최명영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에서 최소 단위는 수직, 수평의 선과 면이다. 작가는 검은색 바탕 위에 수많은 흰색 붓질을 중첩시켜 바탕을 지워나가면서, 한편으로는 흰색을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한다. 화면의 검은 선들은 백색 물감을 중첩하는 과정에서 남은 최소한의 여백이다. ‘평면조건’을 위한 또 하나의 최소단위는 색이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흑색과 백색은 다른 색의 본질을 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색이며 작가가 추구하는 평면성을 이루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색이라 할 수 있다.1)”
◇지문과 309碑를 포괄하는 一橫
이번 전시에서 특히 1970년대 중반이후부터 현재까지 45년 이상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이른바 지문(fingerprint)으로 질료를 반복해온 작품에 주목했다. 화백의 작업실을 다수 방문했던 필자는 일관되게 몸이라는, 신체성을 매개로 ‘평면조건’의 사경(寫經)적 회화를 구현하는 것을 목도했다.
격정적이지 않은, 완급을 조절한 호흡이자 시대정신이 융합된 중간색 질료의 지향과 관련한 지문프로세싱에 대해 “캔버스평면 위 호흡에 따라 변화를 생각하며 작업한다.”라고 했다. 이점은 최명영 작가가 오리진(Origin), 1970년대 초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운동 멤버로써 활동했던 논리성향과 조형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히 미술에서 우리전통에 대한 자각의식이 싹터 작가들이 고무되고 작업하는데 밑거름이 됐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당시 나는 미술그룹이 지향했던 ‘현대미술의 환원과 확장(Reduction and Expansion of Contemporary art Origin Painting Association)’에서 또 하나 주목했던 부분이 ‘포괄(inclusion)’이었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과 동기부여를 준 것이 환원이라면 단색화는 포괄성과 밀접한 관계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 확장성엔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의 정신성 그러한 한국의 맥(脈)이 내재되고 있기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다음은 추사 김정희(CHUSA KIM JEONG HUI,秋史 金正喜,1786~1856)로부터 전해 들으며 예서(隷書)에 관해 적은 조선후기서예가 옥수 조면호(玉垂 趙冕鎬,1804~1887)의 ‘완당예서변(阮堂隸書辯)’일부이다.
“그 法의 뛰어남은 경험(勁險)과 졸박(拙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분간(分間)과 포백(布白)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바로 一橫이 그것이다. 흩어 놓으면 309碑를 포괄하였는데….2)”
어떤 유적탐사의 실마리가 되는 지문처럼, 여기서 일횡(一橫) 즉 가로 획 하나에 309비(碑)를 포용해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추사 금석학서법의 정수(精髓)를 밝히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최명영 ‘평면조건’엔 동양적 사유와 절제미로 내재된 격물치지(格物致知) 그 숭엄한 비문(碑文)의 정신이 배어나온다. 시·공을 초월해 이어오는 아이덴티티(Identity), DAN가 오버랩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디지털미디어시대 ‘지문(指紋)’이라는 인간의 신체성(physicality)을 통한 응축과 융합의 ‘평면조건’이 추사의 ‘一橫’과 깊게 조우하는 내력이 되는 지점이다. 동시에 미술그룹운동이 지향했던 그러한 ‘과정(Process)’에 가장 충실한 단색화(Dansaekhwa)로 ‘최명영-평면조건’을 꼽는 근거가 된다.
◇나의 작업은 흔적을 남기는 것
“얼마 전 동네 마을을 산책하다가 꽃집에 들러 자그마한 화초 두 그루를 샀다. 작업실 창가에 가지런히 앉혀놓았다. 작은 잎들이 피어오르는 경이로운 일상이 감사하다. 나의 작업은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뭐랄까, 그냥 삶의 흔적 같은 것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궤적처럼…. 그것이 나의 단색화다.”
◇최명영(崔明永,1941~)
황해도 해주 출생. 1957년 국립인천사범학교 입학하여 한국단색화 블루칩 정상화(CHUNG SNAG HWA)화백에게 미술지도 받았다.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4,19학생의거를 맞았다. 오리진회화협회(1963~1993), 한국아방가르드협회(1970~1973), 에꼴드 서울(1975~1999), 파리비엔날레(1967), 상파울로비엔날레(1969) 등 활동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75~2007), 영국 울버햄튼대학 교환교수(1990~199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장(1988~2000)을 지냈고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다.
▲참고문헌
1)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展,국립현대미술관 도록, 2012.
2)朝鮮時代 金石學 硏究(조선시대 금석학 연구), 朴徹庠(박철상) 계명대학교대학원 2014/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
△글=권동철, 4월26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