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꽃향기가 전시장을 가득매우는 듯하다. 여인의 마음과 꽃의 향연이 서로를 존중하며 화기애애한 밀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아함과 은밀함, 고독과 환희의 메시지를 화폭에 담고 여류중견화가 임혜영 ‘일흔 즈음에-화양연화’초대전이 빛나고 있었다.
6월1일 오픈하여 13일까지 2주간 서울 인사동길, 마루아트센터(MARU ART CENTER)1층, 1관에서 임혜영 작가(ARTIST LIM HAE YOUNG)의 ‘Flora(플로라)’, ‘환생’연작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53회 개인전이 성황리 진행 중이다.
충만감으로 가득할 때 비로써 붓을 놓는 화가처럼 완전한 것은 진정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법인가. 정오의 햇살이 수면 위를 튕겨 오른다. 물과 햇살이 눈부시게 소리 없이 무한공간의 허공에 제 빛깔을 색칠했다. 놀라워라, 그 모든 것이 찰나에 이뤄지는 우주의 묘사(描寫)라는 것이….
또한 애틋한 사랑의 노래인가. 심연바다가 가슴으로 품은 블루칼라(Blue Collar). 가벼이 찰랑인다. 이별의 슬픔을 스스로 다독였던 아픈 시간의 흔적들이 그 물살에 녹아 사라져가는 것도, 순간이었다. 도대체 아픔은, 상처는 어디로갔단말인가.
만발한 꽃봉오리는 강렬한 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몇 꽃잎을 따라 보낸다. 물위의 꽃, 물을 닮은 여인과 고요의 바다…. 새 무리가 망망대해를 높게 더 멀리 비행(飛行)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의기양양하게 뭍으로 돌아오는 새. 둥지를 찾는가. 날개를 활짝 편 순간 작디작은 몸통, 두 발 뿐인 새가 고스란히 포착됐다. 손이 없는 새, 오오 무욕(無欲)의 존재여!
달빛은 고요히 흐르고 밤은 깊어간다. 물결에 출렁이던 꽃잎이 날아오른다. 몽환(夢幻)의 시각인가. 첼리스트 지안 왕(Jian Wang), 기타리스트 외란 쇨셔(Goran Sollscher)가 함께 연주한 핀란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13Pieces for Piano, Op.76:Ⅱ. Etude(에뛰드)’가 흐른다.
새들의 소망을 품은 꽃잎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첼로와 기타소리가 어우러져 깊은 슬픔과 어떤 연민에 이끌려 꽃잎이 폭풍의 눈발처럼 흩어진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빛사이 형형색색 꽃잎들이 나풀거리고 회상(回想)의 갈피들엔 추억의 장식들이 펼쳐졌다. 선율은 흐르는 세월을 적시고 여인의 독무(獨舞)는 계속됐다.
임혜영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흔에 바라보는 내 생의 캔버스. 꽃을 그리며 그 마음을 읽는다. 여인을 그리며 그 삶을 생각한다. 고백하건데, 화가라서 행복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고맙다. 잡을 수 없는 꿈을 쫒았던 시절, 손을 내밀며 목 놓아 불렀던 열망들….
이제는 기도의 시간임을 나는 안다. 종소리 울리고 노을이 저 들녘과 강물, 바다가 하나라는 것을 친절하게 안내하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경건한 꽃잎 하나인지 깨닫게 되리. 마냥 신난 아이의 들뜸처럼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듯 꽃잎들에 안기듯 다가간다. 그때 향기로 가득한 꿈길이 열리고 나의 작품 ‘여인’은 깊은 잠에 이끌릴 것이다. 죽는 날 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 리라!”
△권동철=6월3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