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劉永國, 1916~2002)은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며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쿠니오(佐藤 九二男)에게서 처음 유화를 접했다. 강압적인 학교 교육에
불만을 품고 중퇴하여, 1935년 일본에 건너가 당시 가장 진보적인 미술학교 중 하나였던 문화학원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재학시절 일본인 학우들과 함께 N.B.G.(Neo Beaux-Arts Group)그룹을 결성하여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고, 독립미술협회, 자유미술가협회 등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미술단체에서 활동했다. 이미 1940년대 초 완전한 ‘추상’을 시도하여, 김환기와 함께 한국추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1943년 귀국 후에는 고향에서 어부와 양조장 주인으로 생활하다 해방을 맞았다.
195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 상경하여,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을 주도하며, 한국화단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64년 첫 개인전 이후 대부분의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작고할 때까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하며, 평생 전업화가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영국의 작품은 1960년대 초부터 일관되게 ‘산’을 모티프로 하였다. 이때 산은 단순히 풍경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담은 아름다운의 원형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형태와 색채, 질감 등 회화적 요소들을 실험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과업을 부과하듯, 완전히 절대적인 추상의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갔는데, 이 모든 과정은 약 2년에 한 번씩 열었던 개인전을 통해 발표되었다.
각각 1972년과 1974년에 제작된 ‘작품’은 유영국의 회화적 경로에 있어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는 스스로 “60세가 될 때까지는 공부를 하고,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그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실제로 이 무렵 그의 작품은 완전한 절대 추상에서 점차 자유로운 색감과 형태감으로 변모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방형의 화면 위에 한 작품은 차가운 계열의 색채를, 다른 한 작품은 따뜻한 계열의 색채를 과감하게 대별한 가운데, 각각의 작품은 같은 계열의 색채 내에서 미묘한 변주를 더하고 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던 화가 유영국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글=김인혜>
△권동철=2월17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