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뒷모습 그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하여”
최근 설치미술가 조숙진의 ‘흔적(TRACES)’사진집이 출간, 주목받고 있다. 작가가 2001~2014년까지 14년여 동안 방문했던 미국, 독일, 터키, 인도, 브라질, 중국, 한국 등 다양한 국가의 촬영 기록을 담았다. 1988년 이래 뉴욕에 거주하며 종합예술가로서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숙진 작가를 이-메일(e-mail)로 인터뷰를 진행, 2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최근 ‘흔적’사진집 출간에 대한 소감을 주신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틈틈이 찍은 사진들이 사진집으로 정리되어 숙제를 마친 기분입니다. 제 사진에 계속 관심을 주시고 세 번째 사진집을 출판해주신 눈빛출판사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역사성의 오래되고 흔적이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떤 영감을 얻는지요.
글쎄요. 이 책 사진의 경우, 축적된 흔적의 역사 속에 이미 떠난 사람들의 존재가 느껴지는 울림이, 그런 감동이 컸어요. 그 흔적들은 삶의 진행과 소멸, 파괴의 절묘한 과정을 보여줬는데, 저는 그 순간 렌즈를 통해 포착하려 했습니다.
한때 사람들이 살고 일했던, 이젠 버려져 언젠가 사라질 건물들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과 건물이 상호작용하여, 독특한 미적 특질을 형성했어요. 그 발견이 영원히 순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했어요.
또 한편으로 삶과 죽음의 순환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똑같이 진행되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우리 삶도 순간인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거 같아요.
흥미로운 건, 몇 년 후 이 사진들을 정리하면서보니, 이 사진속의 내용과 제 나무작품들과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좀 놀랐죠. 제 나무작품과 연관된 소재를 찾으며 찍은 게 전혀 아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 와 닿는 대로, 직관적으로 찍었습니다.
-쓰고 버린 나무, 용품, 가구 등을 작품화 하시는데요.
저의 주요 작품인 나무작품의 경우,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 갖지 않는 재료 이를테면 사람이 쓰고 버린 나무, 용품, 가구 등을 수집해 쓰는데요. 제가 줍지 않았다면 소멸했을 오브제에서, 축적된 흔적을 살리고 아름다움과 생명성을 찾아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버려진 것,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차별의식도 있고요. 그것들이 우리들의 뒷모습일 수 있는데, 열린 마음으로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세상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저는 어떤 작업을 하든 어떤 매체를 쓰던, 제 직관과 경험을 기반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제가 공유하고 싶은 그 경험과 감동을, 관람자들이 작품에서, 공간속에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궁극적으로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감동받고, 생각하고, 영감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른 분야 아티스트와 협업에 대한 의미를 전하신다면….
오래전부터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협동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요. 그동안 많은 나라 이를테면 미국, 스위스, 인도, 볼리비아, 브라질, 폴란드, 스웨덴 등에서 작곡가, 건축가, 학생, 장애우, 예술가 등과 함께 협동 작업을 해왔습니다.
현재는 과테말라에 건축과 예술을 종합한 ‘Art House Chapel’을 짓고 있고, 채플 안에 들어갈 아트작품과 여러 디테일을 구상 중입니다. 첫 번째 ‘아트 하우스(성소)’는 2018년 니카라과에 세웠어요.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에 ‘Matisse Chapel’, 텍사스 휴스턴 ‘The Rothko Chapel’, 뉴욕 Saint Peter’s Church에 있는 ‘Louise Nevelson’s Chapel‘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단지 제가 하는 프로젝트는 가난한 나라에 세우는 것이고, 적은 예산이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와 민족들을 만나면서 ‘공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물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다 똑같이 중요한데, 우리 인간은 욕심과 우월의식으로, 상처주고 파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존재도 똑같이 자유를 원하는 것을 인지 못하고….
한번은 학교도 운영하고 좋은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냥개 같은 큰 개를 7년 동안 묶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몇 달 후 작업을 마치러, 다시 돌아가 3주 있는 동안 주인의 허락을 받고, 매일 같이 뛰었습니다. 처음 목줄을 풀었을 때, 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바닥에 구르고, 그냥 달리더군요.
이 세상에 모든 존재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권동철=2월7일 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