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공유 그 연결고리를 찾아서
길을 지나다 우연히 조그만 구멍가게를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강한 태풍과 같은 소비의 홍수가 동네라는 공동체 개념마저 앗아가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잠시 숨을 고를 여유가 있다. 시간에 대한 이해는 쉽게 사라져가는 것들의 다른 의미를 일깨워 준다.
다소 어눌하고 어질어져 보이는 구멍가게 풍경과는 달리 내 그림은 절제된 구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하나 그 가게의 내부까지 정돈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무엇을 파는지, 주인은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가게에 비치된 물건들은 절대 풀 수 없는 암호로 그려지는 궤적의 낯선 집합이 아니다. 날카로운 펜의 재질에도 그 영향이 있고 내 마음에도 그 이유가 있다. ‘비록 소소한 정이라도 기개가 없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작업 내내 나와 함께 했다.
빠르고 쉽게 다량의 작업을 선보여야 하는 작가로서의 아쉬움을 대신하여 힘들고 중노동에 가깝게 그리면서 실사에 바탕을 두어 한 터치 한터치가 무의미를 표방하지 않도록 선긋기 중첩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보고 그린다.’는 행위가 내 그림의 중심이고 동시대의 대표적 서정을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내 작업의 모태이다.
터진 옷을 기워줄 엄마의 보물 상자인 반짇고리가 있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나를 위해 묻어둔 포근한 이불속에 공깃밥이 있다. 투박하지만 서민적인 반짇고리나 모란꽃 문양의 수가 놓아진 이불이나 베개, 그 속의 공깃밥 같은 모성(母性)의 또 다른 기억이 내 작업을 계속하게 할 것이다. △글=이미경(Lee me kyeong)작가.
△전시=이미경展, 2015년 12월30~2016년 1월24일, 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5F.
△권동철=1월9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