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의 일상과 삶 리얼리즘의 승리
“빛이 삶의 본질이 아니라 어둠이 인간 존재의 본질일 수 있다. 그 어떤 절망, 회의 속에서도 다시 꽃 피우길 바라는 어둠, 그 너머의 빛이다.<황재형 어록, 국립현대미술관도록2021>”
1980년대 민중미술 속 ‘광부화가’로 회자되며 독자적 작품세계에 천착해 온 한국리얼리즘미술 대표작가 황재형. 탄광촌일상과 삶을 그려내며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3년간 광부로 일하면서 ’목욕-씻을 수 없는,83’, ‘식사,85’ 등의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일을 끝내는 날 선산부가 집에 가서 같이 먹자고 그러데요. 그런데 라면 밥을 올려놓은 자개상이 칠이 벗겨져 그 속에 고춧가루, 밥 알갱이들이 끼어 들어가 섞여 있더군요. 나도 고생을 할 만큼 해봐서 웬만한 것들은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고 라면 밥이 변소의 구더기처럼 보여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겨우 억지로 참은 뒤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참담했습니다. 과연 내가 그렸던 작품은 뭐였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내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연스럽게 결론이 도출되더군요. 결국 남을 속이기는 쉽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윤철호, 길에서 만난 사람, 쥘 흙과 뉠 땅을 찾아 태백을 넘는 화가 황재형, 사회평론 길, 93>”
작품 ‘식사’는 갱도에서의 점심시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잊어진 존재를 화면 위로 건져 올리는 황재형에 의해 광부의 초상은 ‘지금, 여기’를 증언하는 실재의 얼굴이 된다.<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는 의미처럼 동료와 헤드랜턴에 비치는 석탄가루가 내려앉은 도시락을 먹었던 경험을 시각화한 작가는 그 기억을 삶의 진실이자 연민이라 토로했다.
“나 역시 반짝거리며 날리는 탄진 속에서 검은 손으로 떨어지는 탄 알갱이를 도시락에서 집어버리면서 그들처럼 달게 도시락을 비울 수 있었다. 허심탄회한 농담에 실없이 나오는 웃음 속의 흰 이, 쪼그려 앉아 머리를 맞대고 보니 그 굴속은 어머니의 뱃속 같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에 화인처럼 찍혀져 남고 급기야는 나를 이곳에 묶었다.<김영하, 쥘 흙과 뉠 땅 화가 황재형, 오늘예감 96>”
이와 함께 황재형 작가는 무려10년에 걸쳐 ‘백두대간,1993~2004’작품을 완성했다. 폭설내린 밤에 본 풍경을 그리고자 다음 날 아침 그 장소에 갔으나 어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고요함만 있는 체험도 화폭에 스며있다. 그것은 대상을 여러 차례 관찰하고 새롭게 발견한 부분을 작품에 반영하고자하는, ‘대상의 본 모습은 내면에 있다’는 화두와 맥락을 같이 한다.
“황재형 작가의 세계는 이 땅의 진실을 읽게 합니다. 삶의 현장이나 국토의 아름다움, 모두 진실의 실체를 확인하게 합니다. 어쩌면 리얼리즘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8월호, 2021